천주산 자락 장붕익 부사 선정비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장붕익 부사 선정비 안내문
천주산의 맑은 바람이 머무는 창원 의창구 동정동 길목에는 오래된 비석 두 기가 조용히 서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빠르게 오가는 오늘날에는 그 존재가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조선 시대 한 지방관의 삶과 백성을 향한 정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장붕익 부사 선정비(張鵬翼 府使 善政碑)」이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만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왕조의 흥망과 전쟁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한 지역을 다스렸던 관리가 백성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역시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이다. 천주산 아래 자리한 이 두 비석은 한 사람의 이름을 넘어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묻는 역사적 기록이다.
장붕익(張鵬翼)은 조선 숙종과 영조 시대를 살았던 무신이다. 자는 운거(雲擧), 호는 우우재(憂憂齋)이며 본관은 인동이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을 시작으로 창원대도호부사,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했고, 이후 어영대장과 훈련대장, 한성판윤, 형조판서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두루 거쳤다.
그가 창원대도호부사로 재임한 기간은 1702년 11월부터 1703년 7월까지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역 백성들에게 남긴 인상은 깊었다. 그 결과 후대 사람들은 그의 공적을 기리고자 선정비를 세웠다.
큰 비석에는 「부사장공붕익운거만고명엄선정비(府使張公鵬翼雲擧萬古明嚴善政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는 장붕익 부사의 밝고 엄정한 정치를 오래도록 기린다는 뜻이다. 또 다른 비석에는 「부사장공붕익청엄선정비(府使張公鵬翼淸嚴善政碑)」라고 새겨져 있다.
‘명엄(明嚴)’과 ‘청엄(淸嚴)’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에게 요구되었던 공정함과 청렴함의 덕목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 선정비는 단순히 권력자를 기념하는 비석이 아니라, 백성들이 기억하고 싶었던 행정의 모습을 기록한 사회적 증표였다.
장붕익 부사 선정비
이곳에 비석이 세워진 까닭도 의미가 깊다. 천주산 자락은 과거 창원도호부에서 주물연진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물연진에 작은 소공관을 설치하여 왜국 사신을 접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외교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이 길 위에 장붕익의 선정비가 자리한 것은 그가 다스렸던 공간과 역사의 흐름을 함께 보여준다.
장붕익이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포도대장 시절의 일화다. 그는 영조 시대 한양의 치안을 담당하며 ‘검계(劍契)’라는 비밀 조직을 강력하게 단속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문인 이규상의 「장대장전」에는 검계 출신 인물이 장붕익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그는 국가 질서를 지키는 데 엄격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쪽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강력한 통치와 엄정한 법 집행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보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공정과 인권의 가치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천주산 아래 두 개의 비석은 낡고 작은 돌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시대가 요구했던 지도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직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백성에게 남는 정치는 무엇인지 조용히 묻고 있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의 이름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백성을 향한 마음과 올바른 행정의 정신은 돌처럼 오래 남는다. 천주산 자락의 장붕익 부사 선정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한 사람의 삶은 사라져도, 그 사람이 남긴 뜻은 역사의 길 위에 오래 머문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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