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㊱]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 단상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07 09:24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이상기온이 관측된다

정치는 협치를 말하지만 갈등은 더 깊어지고

경제는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서민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 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깨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탤레비젼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가치있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 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 버렸다.

공기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어났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온라인 공간에서 많이 읽히는 제프딕슨(Geoff Dixon)의 시 ‘우리시대의 역설(The Paradox of our Time)’을 보면 산업의 발전이나 기술의 진보가 생활을 편리하게 할지언정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늘은 절기상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다. 하지만 절기가 무색할 정도로 입추에도 폭염은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제는 서울의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며 기상 관측 이래 손꼽히는 폭염을 기록했고, 전국 곳곳에서도 38~4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이어졌다. 기상청은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겹치면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당분간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오늘도 낮 최고기온이 39도에 이르는 등 찜통더위가 이어지겠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다시 폭염특보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고, 광복절 전후까지는 이른바 ‘불가마 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분수대에서 불가마 더위를 식히는 모습. 이미지 사진

계절은 가을을 가리키지만 여전히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이다. 이처럼 현실과 기대가 엇갈리는 풍경은 날씨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비슷한 이상기온이 관측된다.


정치는 협치를 말하지만 갈등은 더 깊어지고, 경제는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사람들의 불안과 고독은 오히려 커지고, 소통의 수단은 넘쳐나는데 진심을 나누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입추는 달력 위에서 먼저 찾아왔지만 계절은 아직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자연은 언젠가 반드시 가을로 향하겠지만, 사람의 사회는 저절로 계절이 바뀌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 그리고 미래를 향한 책임 있는 선택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도 폭염 같은 갈등이 한풀 꺾이고, 이름뿐인 가을이 아니라 진짜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국민들은 변화와 통합을 기대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대립과 공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생 현안과 미래를 위한 정책 경쟁보다 정쟁과 진영 논리가 앞서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적지 않다. ‘정치 혐오’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린 지 두 달이 지났다. 유권자들은 지역의 낡은 관행을 바꾸고 민생을 회복해 달라는 뜻을 한 표 한 표에 담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의 모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 경쟁과 생활 현안에 대한 논의보다 정당 간 공방과 책임 떠넘기기가 앞선다. 지방자치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자리에는 벌써부터 다음 선거를 의식한 행보와 이미지 정치가 넘쳐난다. 변화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실망은 다시 정치에 대한 냉소로 번지고 있다. 민심의 선택은 ‘변화’를 요구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전투구에 빠져 있다. 정책 논쟁은 실종되고, 정쟁과 이미지 정치만 난무한다. 


계절은 가을을 가리키지만 여전히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이다.

달력은 입추를 지나 가을을 말하지만, 정치의 계절은 아직도 한여름 폭염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하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삶을 바꾸는 정치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경제 상황 역시 겉으로 드러난 지표만큼 낙관적이지는 않다. 반도체 수출과 내수 회복에 힘입어 성장세가 이어지고 소비심리도 기준치를 웃돌고 있지만, 유가 상승과 생활물가 부담,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압박은 여전히 서민들의 지갑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다소 개선됐으나 실제 생활형편이 나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용시장도 전체 수치와 현장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크다. 취업자 수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지만 청년층 고용률은 뒷걸음질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구직 기간은 길어지고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인건비와 임대료, 원재료비 부담 속에서 매출 회복을 기다리며 ‘기약 없는 버티기’에 지쳐가고, 시민의 살림살이는 아직 폭염 한가운데 있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말은 들리지만, 가계소득과 골목상권까지 온기가 퍼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다. 그럴수록 시집 한 권이라도 읽는 여유 갖기를 권유한다.


자고이래로 문화와 예술이 번성할 때,

사회의 기운도 회복되고 사람들의 삶도 윤기를 되찾았다. 문학은 정치를 바꾸지 못하지만, 정치를 견딜 힘은 줄 수 있다.


시 한 줄이 세상을 구하진 않지만, 세상의 무게에 짓눌린 마음 하나쯤은 살릴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 그럴수록 시집 한 권이라도 읽는 여유 갖기를 권유한다.

정치도, 경제도, 공동체도 지쳐 있는 시기.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문학과 예술의 자리를 돌아봐야 할 때다. 


어떤 이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책이나 읽자는 말이 사치스럽다”고.


하지만 역사는 정반대의 사실을 증명해왔다. 위기 속에서 문화는 살아났고, 문화는 다시 위기를 견디게 해주었다.


사르트르도 그렇게 생각했고, 로맹 가리도 그렇게 깨달았다. 삶이 예술이 되어야 한다. 


오세영 시인은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라고 했다. 이즈음 해서 한번쯤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돌아가는 길을 생각해봐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앞만 보고 멈춤없이 너무 바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진부한 얘기가 되었지만 산업화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물질적인 삶은 더없이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값비싼 것이었다.

자본과 물질적 풍요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삶은 메말라져 간다.

생산의 효율화를 위한 부품으로 전락한 개인의 삶은 팍팍해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은 획일화되었다.

‘풍요 속의 빈곤’과 ‘군중 속의 고독’으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삶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기다.

인간의 자유와 창의, 다양한 개성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이슈로 대두되어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밑바닥부터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예술적인 샘물이 솟아나게 해야 한다.

정말 ‘가치 높은 행복한 삶’은 문화와 예술의 샘에서 자아올려야 한다.


이제는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시대’는 피로를 남겼고, ‘느리게 돌아보는 시간’은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치가 미덥지 않을 때, 경제가 냉랭할 때, 우리는 삶을 지탱해주는 다른 축을 찾아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문화이고, 책이며, 시다.


문학은 삶의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하루 10분이라도 시집 한 권을 펼치는 시간.

그 시간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적 행위일지도 모른다.


천재화가 이인성, 가을 어느날, 1934, 캔버스 유채, 100호.이인성이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품 「가을 어느날」의 제목과 그림속의 상반신 누드그림이 계절의 표현과 차이가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역시 이인성 작가의 감각은 천재성이다. 그는 가을 풍경 속에 상반신 나체 여인을 그렸다.


옛날에도 가을이 이렇게 덥다는 것을 알 게 한다. 곡식이 익어가고, 해바라기도 씨앗을 품고 있다.


폭염이 지나고, 낙엽이 떨어질 무렵.

우리는 올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시간으로 남기보다,

잠시 멈춰 자신을 들여다본 여름이 되길 바란다.


아! 가을이다. 

그림 한 점 속으로 시(詩)의 그늘을 찾아든다.


박상봉 사회부장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08-07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