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査頓)

사돈(査頓)이란 단어의 어원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그럴 듯한 얘기가 고려 때의 명장 윤관 장군과 관련된 것이다. 무관출신인 윤관(尹瓘)과 문관출신인 오연총(吳延寵)은 1107년 각각 도원수와 부원수로서 여진정벌에 나서 승리한 뒤 자녀들을 혼인시켰다.
어느 봄날 술이 잘 빚어진 것을 본 윤관은 사돈이자 평생지기인 오연총이 생각나 하인에게 술동이를 지어 오연총 집으로 향했다. 윤관이 개울가에 이르렀으나 봄비 때문에 개울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건너편에 오연총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술동이를 갖고 윤관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두 사람은 별 수 없이 개울물을 가운데 두고 풀명자나무 등걸에 앉아 서로 머리를 숙이며 권커니잣거니 자작했다고 한다. 사돈은 바로 이들이 앉았던 ‘풀명자나무’(査)와 ‘머리를 숙인다’는 뜻의 돈(頓)이 합해져 나왔다는 얘기다.
사돈이란 말이 윤관과 오연총의 일화에서 나온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사돈을 ‘친가’(親家)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적어도 사돈이란 말이 순(純)국산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영어에서 사돈에 해당하는 말은 ‘in-laws’다. 태어나면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법-계약에 의해 맺어졌다는 뜻이다.
사돈이란 이미지는 다분히 복합적이다. 윤관-오연총의 얘기에서는 자식을 나눠가진 사람으로서 가까움이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일반적 이미지는 조심스럽다는 쪽이 강하다. 우리 말에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 ‘사돈 모시듯 하다’ ‘사돈 남말 한다’와 같은 속담이 많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최근 급격한 핵가족화로 사돈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지만 어렵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고교생 납북자인 김영남씨와 일본인 납치 피해자인 요코타 메쿠미(橫田惠·사망) 가족이 10 여년 전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만났었다. 뒤늦게 유전자 검사에 의해 사돈임을 알고 만난 이들의 통곡 속에서 분단의 아픔과 함께 하루 빨리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길 기원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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