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카럼]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19 23:50




이미지 캡션=ai 제공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특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평가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공적만을 강조하면 역사적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하게 되고, 과오만을 부각하면 그 시대가 남긴 의미와 성과를 놓치기 쉽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오늘날까지도 첨예하게 갈리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나라였다. 산업기반은 취약했고 국민소득도 낮았으며 기업들이 정상적인 금융시장에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기업들은 사채시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높은 금리는 기업의 경영을 크게 압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선택했다. 그것이 1972년 8월 3일 단행된 8·3 사채동결조치였다.


8·3 조치는 당시 기업들이 안고 있던 사채 부담을 조정하고 금융질서를 개편하기 위한 비상경제조치였다. 기업의 자금난을 완화하고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으며, 이후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채권자의 재산권이 제한되는 등 정상적인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가가 시장에 강하게 개입한 것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 매우 강력하고 예외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 역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은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했으며,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국가가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대한민국은 농업 중심의 가난한 나라에서 산업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훗날 세계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정책적 선택과 함께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박정희 한 사람의 업적으로만 설명하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당시 경제관료들의 정책적 노력도 있었고 기업인들의 도전과 투자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산업현장에서 땀 흘린 노동자들이 있었다. 독일과 중동으로 떠난 근로자들, 밤낮없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 자식 교육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부모들의 희생이 모두 모여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지도자의 결단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민의 참여와 희생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지도자의 정책과 국민의 땀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보다 균형 잡힌 역사적 평가일 것이다.

문제는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박정희 시대에는 분명 눈부신 경제적 성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크게 제약된 시기이기도 했다. 1972년 유신체제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됐고 국회와 정당정치의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긴급조치 등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됐으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도 이어졌다.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이유로 이러한 역사적 과오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반대로 유신체제를 비판한다고 해서 당시 이루어진 경제적 성과까지 모두 부정할 필요도 없다. 경제적 공적과 정치적 과오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정희를 영웅으로 만들 필요도 없고 역사의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릴 필요도 없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평가하면 된다. 그것이 오히려 역사적 인물을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특히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 오늘의 대한민국은 더욱 특별할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으며 살아야 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세계적인 산업국가가 된 오늘의 대한민국은 분명 엄청난 변화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박정희만의 역사가 아니다. 산업화의 주역은 지도자만이 아니라 이름 없이 현장에서 땀 흘린 수많은 국민이었다. 그리고 산업화의 과정에서 제기된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또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국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서로 대립하면서도 함께 이어져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 물질적 토대를 만들었다면 민주화는 그 토대 위에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세웠다. 어느 한쪽만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역사를 바라볼 때 가장 위험한 것은 현재의 정치적 입장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을 오늘의 잣대로만 심판하거나 반대로 과거의 성과를 이유로 모든 잘못까지 덮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편리한 이야기만 골라 기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경제성장의 중요한 길을 열었던 지도자였다. 동시에 권위주의 통치라는 무거운 역사적 책임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박정희라는 인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숭배하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영원히 심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잘했던 것은 이어가고 잘못했던 것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지도자의 결단이 있었고, 기업인의 도전이 있었으며, 노동자의 땀과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성장의 그늘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므로 박정희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찬양과 부정 사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과를 함께 바라보는 냉정한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 결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사람의 역사다. 그리고 그 역사를 오늘 어떻게 기억하고 내일의 교훈으로 삼을 것인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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