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낮은 곳에 귀를 대고 ‘바닥’을 읽는 이복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닥을 읽는 사람』 출간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9-25 13:27

돌·새·전광판·도시의 그늘에서 건져 올린 생의 목소리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낮은 곳에 시선을 둔 시인

바닥에 남겨진 마음들에게 늦게 건네는 나의 안부

이복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닥을 읽는 사람』(현대시학) 표지

이복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닥을 읽는 사람』(현대시학)은 제목부터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자세를 드러낸다. 높은 곳에서 풍경을 조망하기보다 몸을 낮춰 발밑을 살피고,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모래톱의 돌과 골목의 길고양이, 지하철 바닥과 낡은 공장, 전광판, 작은 새와 나무, 먼 여행지의 흔적까지 그의 시에 들어오면 하나의 ‘생’이 된다.


이 시집을 단순히 자연 친화적 서정시집을 넘어선다. 문학평론가 박덕규는 해설「옆걸음도 뒷걸음도 없이」에서 이복희 시의 중요한 축을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사물 자체가 지닌 가치와 자생성, 자율성을 발견하는 생태적 감각에서 찾는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돌과 꽃과 새와 나무가 인간의 인식 이전부터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돌의 지문」이다. 굴착기 삽날에 드러난 모래톱의 돌들은 오랜 물살을 견디며 깨지고 깎여 둥글어졌다. 화자는 그 가운데 검은 돌 하나를 손에 쥔다. 햇볕에 데워진 돌의 온기가 가슴으로 옮겨오지만, 시는 인간이 자연에서 위안을 얻는 익숙한 서정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의 “수천 가닥 돌의 지문이 아프다”는 감각이 인간과 돌의 위치를 뒤바꾼다. 인간이 돌을 읽는 동시에 돌이 인간의 발바닥에 자신의 시간을 새기는 것이다.


여기서 ‘바닥’이라는 시집의 제목도 특별한 의미를 얻는다. 바닥은 낮은 곳인 동시에 모든 것이 지나간 흔적이 남는 자리다. 발이 지나가고, 물이 흐르고, 돌이 구르고, 시간이 퇴적되는 곳이다. 이복희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바로 그 바닥에 남겨진 흔적을 읽는 일에 가깝다.


시인의 시선은 자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목눈이집」에서는 죽단화 가지에 지푸라기를 모아 집을 짓는 작은 새를 바라본다. 까치와 딱따구리, 백로가 오랫동안 익혀온 집짓기의 방식까지 새의 움직임 속에 겹쳐진다. 인간의 계획과 설계가 아니라 자연이 축적해온 오래된 지혜가 한 칸의 둥지를 완성한다. 박덕규는 이러한 장면에서 자연이 인간의 허락이나 개입 없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읽어낸다.


그 생태적 감각은 여행지에서도 이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완도 갯돌해변, 순천만 습지, 고성 앞바다 거북섬, 서울 문래동 철공단지, 헝가리 다뉴브강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발길은 넓다. 그러나 관광지의 명소를 소비하는 여행자의 시선과는 거리가 있다. 장소가 가진 역사와 정보를 앞세우기보다 그곳에서 실제로 마주친 사물과 생명, 그 표면에 남은 시간에 오래 머문다.


특히 「다뉴브강의 신발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강변에 놓인 신발 조형물을 통해 거대한 역사를 개인의 흔적으로 되돌려 놓는다. “끈 풀린 꼬맹이 운동화, 굽 닳은 구두, 기름때 묻은 작업화”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 역사적 비극을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불러낸다. “주인을 잃은 신발들이/돌아오지 못한 시간을 신고 있다”는 인식은 이 시집이 자연 생태를 넘어 인간의 역사와 상처까지 어떻게 끌어안는지를 보여준다.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도 흥미롭다. 문래동의 철공소에서는 쇠를 깎고 녹슨 철판 사이로 불꽃이 튀는 산업 현장에서 오히려 ‘봄’을 발견한다. 「굶주린 전광판」에서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전광판을 하나의 굶주린 생명체처럼 포착한다. 「도시 사냥꾼」, 「통돌이세탁기」, 「돌아가는 타이머」 등에서는 현대인이 욕망과 소비의 회로에 붙잡히는 순간을 사물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낸다.


따라서 『바닥을 읽는 사람』의 생태적 상상력은 꽃과 나무를 예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을 비판하는 익숙한 생태시의 문법에서도 한 걸음 더 나간다. 시인은 자연과 사물을 인간의 윤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쉽게 끌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그것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순간을 포착한다. 박덕규가 이 시집의 특징으로 지적한 ‘관찰자적 생태론’이 여기서 힘을 얻는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역시 이복희의 시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낮은 곳에 오래 시선을 둔다”고 평한다. 그의 말처럼 바람이 빠져나가는 쪽문, 발바닥이 견뎌온 길바닥, 뒷골목의 길고양이, 모래톱의 돌과 얼굴을 잃은 불상 등은 이복희의 시 안에서 저마다 자신의 생을 증언한다. 그래서 이 시집에 남는 것은 거창한 선언보다 ‘버텨온 것들의 체온’이다.


시집 후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관찰은 삶의 유한성과 시간에 대한 성찰로 깊어진다. 바닥은 단순히 아래쪽 공간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들이 포개지는 장소가 된다. 깎이고 굴러온 돌, 주인 없는 신발, 오래된 공장, 둥지를 트는 새는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모두 시간을 몸에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만난다. 이복희가 읽으려는 것은 결국 사물의 표면 아래 축적된 시간이다.

이 때문에 『바닥을 읽는 사람』에서 ‘읽는다’는 동사는 중요하다. 시인은 세계를 설명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읽으려 한다. 그것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낮춰 읽는다. 돌의 상처를 지문으로, 낡은 신발을 돌아오지 못한 시간으로, 둥지를 한 생명이 완성해가는 집으로 읽어낸다. 이 독법이 이복희 시의 개성을 만든다.


이복희 시인

이복희는 경북 김천 출신으로 첫 시집 『오래된 거미집』에 이어 이번에 『바닥을 읽는 사람』을 펴냈으며, 수필집 『내성천에는 은어도 별이 된다』와 공동시집 『바람집을 썰다』 등을 냈다. 2010년 《문학시대》 수필 신인상, 2022년 계간 《시에》 시 신인상을 받았다. 최근에도 《창작산맥》, 《시에》, 《불교와문학》, 《사이펀》, 《시와산문》, 《디카문학》, 《시하늘》, 《포에트리슬램 ABBA》 등에 시와 수필을 잇달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바닥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디까지 몸을 낮춰 볼 수 있는가를 묻는 시집이다. 화려하고 높은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시대에 이복희는 반대편을 향한다. 깎인 돌의 상처와 작은 새의 둥지, 낡은 신발과 공장의 불꽃처럼 좀처럼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존재들을 시의 한가운데 세운다.


그가 읽는 ‘바닥’은 가장 낮은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삶이 지나간 자리다. 그곳에 귀를 대면 돌에도 지문이 있고, 신발에도 시간이 있으며, 작은 새 한 마리의 둥지에도 오래된 세계의 지혜가 있다는 사실이 들려온다. 『바닥을 읽는 사람』이 독자에게 권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이미 곁에 있었으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다시 보는 방법이다.


10월 21일 오후 6시 경북 구미시 금오시장로 삼일문고에서 이복희·박상봉 ·류경무·심강우 등 네 사람과 함께 하는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가 열린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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