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후폭풍 확산…영화계 "창작자 비난 멈춰야"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10-03 13:37

'육영수 여사 저격 배후에 중정' 가설 제기…"역사 왜곡" 비판


관련 행사 취소·배우 집앞 시위…"한국 사회 갈등 심화" 지적도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암살자(들)' 홍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최용대 기자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영화 행사 중단, 배우들에 대한 신상 비난 등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배우·제작진 등 창작자를 향한 비방을 멈춰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최근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갈등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육영수 피격 배후에 중정이?…국힘 "역사 왜곡" 비판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제작진은 실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영부인 피격 사건의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사건의 책임을 진 동료가 억울하다고 여긴 형사 철구(유해진 분)를 비롯해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 등이 실체를 파헤친다.


영화 '암살자(들)' 속 장면영화 '암살자(들)' 속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극 중 인물들은 수사본부가 발표한 의문점을 바탕으로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파고든다. 인물들은 당시 일본과의 외교 관계 등을 근거로 중앙정보부가 배후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까지 나아간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등 정치권에서는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을 기획했다는 음모론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했다며 비판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는 영화 상영 중단을 주장했다.


제작진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라며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작품의 연출자 허진호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사건 배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정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영화 '암살자(들)' 속 장면영화 '암살자(들)' 속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거세진 논란에 흥행 주춤…배우 SNS에 비난 댓글·영화 행사 취소


논란은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암살자(들)'은 추석 연휴 기간(9월 24∼27일) 140만7천여명이 관람해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디세이' 등을 제치고 승자가 됐으나, 이후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한때 내주는 등 관객 동원 속도가 주춤했다.


하루 평균 관객 수는 추석 연휴 기간 35만1천여명에서, 논란이 정치권에서 불거진 이후 6만4천여명(9월 28일∼10월 2일)으로 약 80% 줄었다. 연휴와 평일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큰 폭의 감소다.


실제 관람객 평가를 토대로 한 CGV 에그지수는 개봉 첫날 95%에서 3일 기준 90%까지 내려왔다. 온라인에서는 비판이 거세지며 네이버 네티즌 평점이 10점 만점에 2.6점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파는 참여한 배우들에게까지 번졌다.


유해진이 모델로 출연한 패스트푸드 브랜드와 증권사 유튜브 광고 영상에는 항의성 댓글이 이어졌다. 현재 영상의 댓글은 닫혀 있는 상태다.


이민호, 류혜영 등 출연 배우뿐만 아니라 '암살자(들)'의 추천평을 남긴 배우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비난하는 댓글이 이어지는 등 논란은 확산했다.


이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참석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영화 관련 행사를 취소했다.


유해진과 이민호는 오는 6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고, 7일 영화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암살자(들)' 야외무대인사 행사는 무산됐다. 같은 날 이민호가 참여하기로 한 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도 취소됐다.


개봉 2주 차 주말을 맞아 3∼5일 계획된 '암살자(들)' 무대 인사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5일 열기로 한 '암살자(들)' 대시민 시사회를 취소했다. 위원회는 작품의 최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작품 내용이나 이를 둘러싼 특정 입장에 대한 판단과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계 "창작자 비방·협박 멈춰야"…"갈등 커진 사회 반영" 지적도


영화계 단체는 창작자를 향한 비난을 자제해달라고 잇따라 목소리를 냈다. 비난이 배우 얼굴 등 개인 신상으로까지 향하고 한 보수 단체는 유해진 자택 앞에서 집회한다고 밝히는 등 논란은 과열되는 양상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듯,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그에 따른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현재의 논쟁이 작품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제작사와 감독, 배우와 스태프 등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위협으로 확산하고 있어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참여자의 개인에 대한 비방과 협박, 사생활 거론, 신변의 안전, 생업을 위협하는 일들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CGK)도 "작품을 보고 느끼신 생각은 모두 소중하다. 공감도, 아쉬움도, 다른 시각도 영화를 둘러싼 의미 있는 대화의 일부"라면서 "그 대화가 작품을 넘어 창작자와 배우 개인에게 향하거나, 관객의 평가가 있는 그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앞으로 창작자들이 새로운 이야기에 도전하는 일이 조금씩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 사건을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 '그때 그 사람들'(2005)을 둘러싼 논란 등과 견줄 때 최근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갈등 양상이 이번 논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때 그 사람들'은 극 중 대통령이 여색을 밝히고 일본어를 자주 사용하는 장면 등을 두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적 분쟁에 휘말렸지만, 당시 배우들의 신상과 다른 활동에까지 영향이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암살자(들)'을 비롯해 영화 한 편을 둘러싼 갈등은 심화하는 양상이다. 배우 정유미는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남성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난받았고, 가수 나얼은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건국전쟁'(2024) 포스터를 SNS에 올렸다가 많은 악플을 받아 댓글 기능을 막았다.


영화계 관계자는 "'그때 그 사람들' 개봉 당시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까지 공격하는 모습은 없었던 것 같다"며 "영화의 잘잘못을 떠나 서로 비난하고 갈등하는 상황들이 심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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