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적」
홍 영 복
시간이 지나가면
바래고 옅어지듯
갈등도 세월 흘러
산산이 부서진다
심지어
머리 색깔은
새하얗게 변하네
◇ㅡ◇ㅡ◇ㅡ◇ㅡ◇ㅡ◇ㅡ◇ㅡ◇
이 작품에서 말하는 ‘흔적’은 단순히 지나간 자국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변해가는 과정 자체를 의미합니다.
세월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삶이 된다
세월은 아무 말 없이 흘러가지만 무엇인가를 반드시 남긴다. 사람의 얼굴에 주름을 새기고, 머리카락에 흰빛을 더하며, 마음속 깊이 박혀 있던 기억과 갈등마저 조금씩 닳게 한다.
「흔적」은 바로 그 세월의 풍화작용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시인은 첫 수에서 “시간이 지나가면 / 바래고 옅어지듯”이라고 노래한다. 시간은 붙잡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지만, 지나간 자리에는 변화가 남는다. 선명했던 빛이 바래듯이 한때는 견디기 어려웠던 감정도 세월 속에서 조금씩 농도를 잃는다.
특히 “갈등도 세월 흘러 / 산산이 부서진다”는 구절은 시간의 치유력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갈등은 당장에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지지만, 긴 시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결국 부서지고 흩어지는 작은 흔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 부분은 더욱 인상적이다.
“심지어
머리 색깔은
새하얗게 변하네”
여기서 시선은 거대한 자연이나 인생의 철학에서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다. 세월의 변화는 관념이 아니라 머리카락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흔적으로 나타난다. 검었던 머리가 희어지는 것은 늙음의 표식이면서 동시에 한 생을 살아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제목인 ‘흔적’의 의미가 깊어진다. 흔적은 반드시 상처만을 뜻하지 않는다.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주름도 흔적이고, 흰머리도 흔적이며, 지나간 사랑과 갈등도 흔적이다.
그러므로 흔적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왔다는 증거다.
작품의 이러한 의미는 자연의 변화와 연결될 때 더욱 넓어진다. 봄의 꽃은 여름을 지나 가을의 열매가 되고, 겨울에는 다시 생명을 감춘다. 바위도 오랜 풍화작용을 견디며 갈라지고 부서진다.
쇠붙이 역시 산화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는다. 자연의 어느 것도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머물 수 없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젊음은 늙음으로, 검은 머리는 흰머리로, 만남은 이별로, 기쁨과 슬픔은 기억으로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흔적」은 늙음에 대한 탄식이라기보다 변화에 대한 수용과 삶에 대한 관조에 가깝다. 세월을 거스르려 하기보다 세월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태도다.
다만 작품의 마지막이 “새하얗게 변하네”에서 끝나는 것은 의미 있는 여운을 남긴다. 흰머리를 단순한 노화의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생을 살아낸 사람이 얻은 시간의 색깔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흔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변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변화의 자리에 삶의 흔적이 남는다.
그러므로 흰머리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지나간 세월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 흰빛 하나하나가 내가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에게서 젊음을 가져가지만 그 자리에 경험과 기억과 성찰이라는 새로운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흔적」은 늙음의 시가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이며 삶을 긍정하는 시조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게 자연이요 삶이다”
특히 이 작품은 ‘흰머리’를 노화의 상징에서 ‘살아온 시간의 훈장’으로 읽어내면 훨씬 따뜻하고 깊은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