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Tolk. 詩 諷刺 (시 토크. 시 풍자) ​우리들 모두 다 개를 키우지_박미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07 01:42


박미라 (글명 글보라)

우리들 모두 다 개를 키우지




너무 흔한 일

야성을 버리고 순한 피로 거듭난 그것은

죽어라 꼬리를 흔들어 처음엔 복종을 증명하지

녀석도 그랬어

살점 없는 몸과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바람개비처럼 날아갈 듯 꼬리를 쳤지

찬 것에 유난한 반응은

버려진 기억이 뼛속에 얼음으로 박힌 까닭이었는지

쓰다듬기만 해도 손바닥이 에이는데

안겨드는 녀석은 내 골수까지 얼리며 부들거렸어

열에 들떠 끙끙거리는 잠을 지켜보다가

그 신열(身熱)을 내 몸으로 다 받아낼 때

개가 나인지 내가 개인지

그 밤은 길고도 선명했지

어떤 절정보다 소름 돋는 비릿한 일치였어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던 개가

점점 더 따뜻하고 기름진 것을 내놓으라며

근육 붙은 등을 곧추세울 때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때야 알았지

길들이기는커녕 길들임을 키워가던


갈수록 기름져 가던 지하자본 같은 생존력

꼬리 치는 작업으로 진화하는 그것의 정체는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지독한 감기 같아서


지금부터 진짜 주인이 누구였는가를

개를 키우면서 조금씩 알아가지.



▪︎프로필

박미라(글명 글보라)

시나무 동인

남다른 시쓰기 회원

2016년 근로자 문학제 시부문 입상

시의시간들 신인문학상 (시부문)





詩 Tolk.  詩 諷刺 (시 토크. 시 풍자)


• 길들임이라는 이름의 소름 돋는 동거로 시작


대한민국의 반려 인구는 약 1,546만 명으로 추산한다. 요즘 집집마다 귀하신 ‘상전’ 한 분씩은 다 모시고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전체 가구 중 약 3할에 달하는 가구가 네발 달린 복실이든, 품에 안긴 앙칼진 녀석이든 키우고 있다는 말. 


다들 "내가 우리 개를 키운다" 큰소리치지만, 사실 털끝만 건드려도 뼈마디가 저려오는 이 시를 읽고 나면 묘한 등골 오싹함을 느낄 것이다. 오늘 함께 살펴볼 작품은 바로 이 인간과 짐승(혹은 관계)의 기묘한 역학관계를 다룬 ‘개’에 대한 풍자 시이다.


1. 꼬리치기로 시작된 거대한 권력 역전


죽어라 꼬리를 흔들며 복종을 증명하지.

시작부터 아주 골 때리게 현실적이다. 개를 처음 데려올 때의 그 불쌍한 눈망울과 바람개비 같은 꼬리짓. "아, 내가 이 가엾은 생명을 구원했구나" 하는 인류애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꼬리치기는 복종의 증명이라기 보다 인간의 방심을 유도하는 고도의 심리전에 가깝다.


처음엔 바들바들 떨며 품에 안기던 녀석이 체온을 나누고 밤을 지새우게 만들면서, 인간은 서서히 그 신열(身熱)에 동화된다. “개가 나인지 내가 개인지 / 그 밤은 길고도 선명했지”라는 대목의 압권처럼 내가 주인이 되어 돌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상대의 온도에 완전히 잠식당해버린 영혼의 공범 관계를 아주 비릿하고도 섬뜩하게 포착해 낸다.


2. ‘기름진 것’을 요구하는 생존력의 진화


근육 붙은 등을 곧추세울 때 /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때야 알았지

뼈마디만 남았던 녀석이 따뜻한 밥을 먹고 힘이 붙기 시작하면 태도가 아주 싹 바뀐다. 이제는 "더 기름진 것을 내놓으라"며 "송곳니를 드러내며" 여기서 개는 우리가 삶 속에서 줄곧 반려해 온 온갖 애물단지들 끝없는 욕망, 통제할 수 없는 관계, 혹은 우리를 갉아먹는 현대 사회의 기형적 구조물을 은유로 확장한다.


우리는 녀석을 길들였다고 의기양양해하지만, 실상은 녀석의 비대해진 생존력과 욕심에 내 주도권을 통째로 저당 잡힌 상태다.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지독한 감기’처럼, 떨쳐내려 해도 이미 뼛속까지 파고들어 온 이 관계는 진정한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깊숙히 깨닫게 만든다.


< 평론적 총평 및 시대적 풍자>


이 시는 반려동물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빌려 ‘지배와 피지배의 주객전도’를 날카롭게 파헤쳐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러니(Irony)와 반어적 어조의 시다.


감동적인 만남으로 시작해 서늘한 깨달음으로 끝나는 탁월한 서사 구조의 미덕으로 

풍자적 의미를 더해 권력을 쥐었다고 착각하는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던져 주어 "내가 너를 키운다"고 믿지만, 결국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우리가 품어 키운 ‘욕망과 피지배의 역사’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결국 지금도 털 날리는 거실 구석에서 24시간 상전 노릇을 하는 녀석들을 힐끗 바라보게 만드는 힘, 내 삶 속에서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나만의 ‘개’를 품고 살아가고 있진 않는지. 길들임의 양방향성과 주체성의 불안정성, 개의 존재 방식을 자본의 논리로 읽어낸 것이 바로 이 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며 오래남는 철학적 잔향일 것이다.


                                        _평론 유리나(이원희)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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