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 코모호수의 작은 마을 레제노시에 코모호수의 아름다움과 시적 감흥을 노래한「영혼의 푸른 눈동자」시비를 세운 최동호 시인(사진=서정시학 TV 제공)
지난 9월 13일 오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코모호수의 작은 마을 레제노시에서 최동호(78) 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 알프스산맥 자락의 호숫가에 한국 시인의 작품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지면서 한국과 이탈리아를 잇는 새로운 문학적 교류의 공간이 탄생했다.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최 시인의 시비는 호수에서 배를 타고 레제노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 잡았다. 시비에는 코모호수의 아름다움과 시적 감흥을 노래한 「영혼의 푸른 눈동자」가 한국어·이탈리아어·영어 등 3개 언어로 새겨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최 시인과 부인 김구슬(73) 시인(협성대 명예교수)을 비롯해 최태호 주밀라노 총영사, 김태우 부영사, 마우리치오 볼레소 레제노 시장, 이탈리아 시인 라우라 가라바글리아 등 양국 문학·문화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문학의 집·서울'과 '서정시학' 관계자 등 약 20명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찾았다. 인구 2천 명이 채 되지 않는 레제노의 주민들도 제막식에 함께했다.
행사는 레제노시 악단이 한국 애국가와 이탈리아 국가를 번갈아 연주하며 시작됐다. 이어 양국 관계자들의 축사와 시비 제막, 시 낭독 등이 진행됐다.
이탈리아 북부 코모호수의 작은 마을 레제노시에서 열린 최동호 시인의 시비 제막식에서 레제노시 악단이 한국 애국가와 이탈리아 국가를 번갈아 연주하고 있다.(사진=서정시학TV 제공)최 시인은 이날 코모호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작품 「영혼의 푸른 눈동자」를 직접 낭독했다. 시에는 알프스의 설산과 코모호수의 에메랄드빛 물결, 산들바람을 마주한 시인의 감흥이 담겨 있다. 호수와 산을 배경으로 울려 퍼진 한국어 시 낭독은 시비 건립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이번 시비 건립은 2018년 루마니아 국제시축제에서 시작된 문학적 인연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당시 최 시인과 처음 만난 이탈리아 시인 라우라 가라바글리아(70)는 이후 교류를 이어왔으며, 이번 행사를 직접 기획했다. 그는 이탈리아 문학단체 '코모 시의 집' 창립자이기도 하다.
가라바글리아 시인은 "이탈리아와 한국의 마음을 연결하는 언어의 다리를 세울 수 있어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태호 주밀라노 총영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서정시학 TV 제공)
최태호 주밀라노 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최 시인이 코모호수에 부친 시는 이탈리아의 자연과 문화 속에서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의 젊은 시인 에두아르도 콘베르티노(26)도 한국어로 쓰인 시가 이탈리아의 호숫가에 자리 잡게 된 것을 반겼다.
제막식에서는 레제노 어린이가 코모호수를 소재로 그린 그림을 최 시인에게 선물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이어 한국과 이탈리아 시인들이 함께하는 시 낭독과 교류 행사가 펼쳐졌다. 황충국 시인은 최동호 시인의 작품 「코모호수」를 축하공연으로 선보였다.
최 시인은 제막식 이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의 본질과 한국인들이 시를 쓰고 읽으며 공유하는 이유 등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 시문학에 대한 이탈리아 현지의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최 시인은 이번 시비 건립과 관련해 "한국의 시인으로서 시비가 이탈리아에 세워진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한국과 이탈리아의 시문학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최 시인과 코모호수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앞서 코모에서 열린 유럽 국제시축제에 참가했으며, 2024년에는 '유로파 인 베르시(Europa in versi)' 국제시축제에서 최고시인상(Best Poet of 2024)을 수상했다. 당시 최 시인은 코모호수의 풍경에서 푸른 눈동자의 영혼을 느꼈다며 자신의 시가 코모와 한국을 연결하는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코모호수는 알프스의 빙하가 만들어낸 호수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으로 이름난 곳이다. 스탕달과 마크 트웨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에도 등장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찾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명소다.
이처럼 유럽의 오랜 문화적 풍경 속에 한국 현대시가 새겨졌다는 점에서 이번 시비 건립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관광객들이 호숫가를 거닐다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이탈리아어, 영어로 새겨진 시를 접하면서 한국 시문학을 만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최 시인은 1979년 시와 평론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시집과 평론집을 다수 펴냈다.
이번 시비 제막은 한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현대시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자연과 일상 속에 스며드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코모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며 탄생한 한 편의 한국 시가 이제 그 호수를 찾는 세계인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이번 시노래비 제막 행사는 김조민 시인이 유튜브 채널 '서정시학 TV'를 통해 영상으로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https://m.youtube.com/watch?v=tjYaJi8wlM8&pp=iggCQAE%3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