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논리, 자급의 논리.

최용대 기자

등록 2025-07-31 09:08

지금 당장, 논의되어야 할 것은 자급이 아니라 무역이다.




《경제》


무역의 논리, 자급의 논리.

논의되어야 할 것은 자급이 아니라 무역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입수해 왔다. 그리고 다양한 기후, 풍토의 지역 자원을 이용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고 유연했다. 북극권이나 칼라하리 사막에서도 인간은 굶어 죽지 않았다. 이러한, 어떤 곳에서나 물자를 조달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멸망하여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생활 물자를 자급하여 조달하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현상으로, 특별히 내세워 논할 만한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인류는 지역의 주민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이 지역적 자급이라는 것 없이는 요리를 비롯한 풍토에 뿌리내린 인류 문화의 다양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급에 상반되는 것이 무역이다. 그리고 무역은 당연한 현상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역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20세기 전반까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식량이나 에너지를 거의 자급하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국제 무역의 네트워크에 깊이 얽혀들게 된 것은 겨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세계의 어디에선가 일어난 사건이 그 즉시 일상생활의 식품이나 일용품의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세계화'라는 현상은 최근 30여 년 이래의 현상이다. 어쨌건 무역은 본래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역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논의되어야 할 것은 자급이 아니라 무역이라는 현상이다. 더구나 대포집의 안주조차도 그 대부분이 수입 식자재로 된 상황을 초래한 세계화한 무역에 대해서는 만인을 납득시킬 만한 매우 탄탄한 근거가 요구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무역의 철학'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역은 마치 자연현상처럼 취급되고 있다. 유명한 리카르도의 비교 생산비설도 무역의 현실을 논한 것이지, 무역의 옳고 그름을 고찰한 것은 아니다. 무역은 필연적인 현상이므로 논의할 것이 없다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역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고대의 스파르타나 현대의 부탄과 같이, 원칙적으로 국제무역을 거부하고 자급을 지향하는 국가의 예도 존재한다. 그러니 역시 무역은 선택사항인 것이며, 그렇다면 무역을 선택하는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자급은 선이고 무역은 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역이 선택 사항이라면 무역의 이유, 목적, 한계 등이 제대로 제시되어 논의가 이루어지고, 그런 논의를 통해서 무역의 방식이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언제부터 세계 무역이 우리가 두려워하면서 섬기지 않으면 안 되는 신이 된 것일까? 한국은 지금과 같은 세계 무역의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는 위협적인 언설이 무역의 이유와 목적에 관한 논의를 막아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 간 무역과 원격지 무역


다만, 자급이라고 해도 이누이트(에스키모)와 같은 완전 자급은 예외일 것이다. 교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된 것이다. 세계 각지에 있는 석기 시대의 유적으로부터 화폐 대신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초기의 소박한 물물교환은 분업의 발달, 화폐의 출현, 운송 수단의 진보와 더불어서 공동체 간의 무역으로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최근까지 무역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어디서든 서민의 일상생활은 지역적으로 자급 가능한 생활 물자에 의존했지, 무역에 좌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전의 일본은 에너지의 70퍼센트 가까이를 자급하고 있었다. 즉, 목탄으로 난방을 하고, 나무로 목욕물을 끓이고, 소와 말이 경작이나 운송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일본에서조차 경제의 자급도가 이렇게 높았으니, 좀 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역은 더욱 예외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고대 이래 무역이 공동체의 경제에 있어서 2차적인 것이었던 시대에는 무역이 지역 간 무역과 원격지 무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역 간 무역이란 서민의 일상생활에도 다소 영향이 있을 생활 물자를 근린 지역 간에 대량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교역하는 것이며, 북유럽을 무대로 목재나 가죽 등을 취급한 중세 북부 독일의 한자동맹 도시 간의 무역이 대표적이다. 한편, 원격지 무역이란 훨씬 먼 곳의 이국적이고 진기한 물산을 왕후귀족 등, 부와 권세를 과시하려는 특권층을 위해서 수출하는 것으로, 위험이 큰 만큼 성공하기만 하면 상인은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무역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한 로마와 중국의 교역이 그 대표적인 예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계 경제의 특징은 지역 간 무역과 원격지 무역이라는 전통적인 구분이 완전히 소멸하여, 예전에는 예외적이며 모험적인 사업이었던 원격지 무역의 논리가 우리들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산 대두와 아랍의 원유 없이는 밥 세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 대전환은 인류 사회 전체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의 주도로 추진되어 온 현상인 것이다.


세계 무역의 탄생: 생활 양식의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


중세 이래 유럽인들의 식생활에는 후추가 불가결했다. 그 이유는 유럽이 중국이나 인도처럼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고기를 많이 섭취하게 되었고, 고기의 보존과 가공을 위해서 후추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유럽은 자신의 풍토에서는 재배되지도 않는 이국의 산물을 일상적으로, 그리고 대량으로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는 예외적인 지역이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콜럼버스가 팔로스항으로부터 미지의 바다로 출발한 것도 인도의 향신료와 지광구(일본)의 황금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항해의 귀결은 스페인인들에 의한 신세계 아메리카의 약탈과 식민지화였다. 


우선 스페인인에 의한 아즈텍과 잉카의 막대한금은(金.銀 )약탈은 유럽의 통화유통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맑스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른 것의 실태가 바로 이 약탈이었다. 그리고 구세계에서는 담배나 설탕 등 신세계의 산물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한편, 신세계에 이주한 유럽인은 종래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물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무한히 확대되는 시장이 탄생했다. 이 시장의 거대한 수요를 충족시킨 것은 카리브해 지역의 플렌테이선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노예노동이었다

풍부한 자본, 무한히 확대되는 시장, 싼 노동력이라는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이렇게 갖춰졌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 무역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대서양 무역이 현대 무역의 원형이다.


전혀 이질적인 사회 간의 접촉에 관해서는 역사상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그 하나는 중국과 로마 사이의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과 같은, 확고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 간의 임시의 부분적이고 주변적인 접촉이며. 또 하나는 흉노와 같은 유목 민족이 정주(定住 ) 농경민족을 침범하여 약탈하거나 정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인의 식민주의는 문명사회가 상대적으로 미개한 사회를 침락하여 그 사회를 문명사회의 주변으로 편입시켜서 두 사회의 폭력적인 이종교배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에도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무역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 교배의 결과로 쌍방 사회의 생활 양식이 격변하였다는 점이다. 이 이후 담배를 피우고 코코아를 마시는 것은 유럽인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식민지를 전제로 한 무역은 서민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생활 물자를 대량으로, 그리고 계속하여 운송, 유통시키는 무역이었다. 게다가 이는 중국의 실크나 인도의 모슬린과 같은 전통적 특산품의 무역이 아니라 미지의 상품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폭발시키는 무역이었다.

이렇게 무역과 생활양식의 사이에 종래의 주종 관계가 역전하여 무역 그 자체가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생활양식의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가 오늘날에도 세계 무역의 원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 무역의 과제는 상호 간에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무한한 확대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랜테이션 경영 등에 있어서 자본이 유통 과정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마저 지배하게 된 것도 대량의 비전통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무역의 발전과 근대 국가의 형성


이렇게 근대의 세계 무역은 식민주의의 폭력을 모태로 태어나, 이에 종사하는 자가 얻은 막대한 이익은 남측 지역의 식민지화나 흑인노예의 존재와 일체화되어 있었다. 이는 지역 간 대등한 입장에서의 교역으로부터 발전한 것이 아니라, 대등한 교환으로 위장한 항상적(恒常的) 약탈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무역이 유럽에서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무역의 발전은 유럽 제국(諸國)의 패권 경쟁과 국왕이나 의회를 궁극의 주권자로 하는 국내 통치 체제의 창출이라는 복잡한 문제와 얽혀 있었다. 콜럼버스의 항해는 스페인 왕실의 후원 없이는 불가능했고, 17세기에 스페인을 밀어내고 대서양 무역의 주역이 된 영국은 청교도 혁명 이후 귀족과 상인이 결탁하여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무역은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됨과 동시에 국가 간의 격렬한 경쟁의 척도가 되어, 무역으로 얻은 부를 국력의 요체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세계 무역의 핵심에 변함없이 국가 간의 경쟁이 존재하며, '자유 무역'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무역이기는커녕, 그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유럽형 세계 무역은 역사적으로 통상적인 상업이나 무역 유형에서 벗어난 특이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의 무역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슬람 사회는 도시적, 상업적인 성격을 지녀서 무역은 그 번영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동의 지역적인 이점(利點)을 살려 동서의 문명을 이어주는 중개 무역으로서, 각지의 정평 있는 특산물을 취급하는 보수적인 형태의 무역이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새로운 생활 양식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그리고 식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며, 상업 자본이 생산 과정까지 지배하는 일도 없었다. 또한 무역은 국가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상인의 사업이었으며, 무역에 의한 번영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변함없이 지역적인 자급에 기초하여 생활했다. 이러한 무역이 자본주의 시스템, 즉 끊임없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무한히 확대하는 시

장과 그에 대응하는 생산 조직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계 무역의 충격이 만들어 낸 근대 개인주의


역사책에 따르면, 봉건적 신분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개인의 해방, 자유로운 개인의 출현이 근대와 중세를 나누는 기준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자유로운 개인을 만들어낸 것일까. 통설처럼 로마 교회에 반대한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비롯되었던 것일까. 그러나 근엄한 중세 수도사의 계율로 돌아가고자 했던 루터를 개인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근대의 개인주의를 낳은 것은 실은 세계 무역의 충격이었다.


중세에는 모든 인간은 어떤 공동체에든 귀속되어 그 공동체의 규칙을따랐다. 폐쇄적인 공동체 속에서는 호혜성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인의 동의나 승인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가 제약된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권리와 의무의 틀 속에서 살아갔으며, 심지어는 국왕이라고 해도 여러 관습이나 서약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리고 상인도 상인이기 이전에 기독교 신도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식민지 경영과 세계 무역은 그 부와 권력의 원천이 공동체의 외부에 있는 사람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 있어서 근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존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북미 대륙에 이주하여 농지 개척에 종사하는 영국인을 모델로 하여 개인의 자연권을 논한 점은 상징적이다.


이 이주자는 공동체의 호혜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 그는 선주민(先主民.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토지를 손에 넣고, 공동체의 승인도 없이 가지고 싶은 만큼의 토지를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얻은 부(富)는 전부 그 자신만의 것이고, 교회의 자선 사업을 위해 기부를 강요당하지도 않는다. 그의 유일한 임무는 근면하게 일하여 소유하고 있는 토지로부터 최대한의 부를 효율적으로 창출해내는 것이다. 그의 사회와의 관계는 거래에 다름 아니어서, 사유재산 거래인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공동체의 간섭만이 아니라 자연의 제약으로부터 재산의 보호를 대가로 국가의 창설에 동의하는 그의 사회계약이 바로 그런 거래인 것이다. 초과 생산한 농산물은 저장해 둬도 부패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상품으로 팔아 화폐로 바꾸어 두면 영원히 부패할 걱정 없는 화폐를 무한히 축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주자의 자유는 안락을 보전하는 수단이었던 사유재의 증식을 끝없이 추구할 자유인 것이다. 로크는 영국을 7대양을 지배하는 대상업 제국으로 일으켜 세운 젠트리 계층의 대변자였다. 그리고 그의 논의는 근대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를 계기로 성립한 세계 무역의 체제와 완전히 일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봉건제틀 타파한 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신념이 아니라, 자본을 소유한 자가 매우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식민지무역이었다. 유럽인이 남북아메리카의 광대한 토지와 풍족한 자원을 공짜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우연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무역은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한편, 로크의 경제적 개인주의만이 근대의 개인주의는 아니다. 종교전쟁의 통절한 체험으로부터 태어난 또하나의 개인주의가 존재한다. 국가나 종교, 당파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충성이 종교전쟁의 원인의 하나였다. 인간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선악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자신의 생활 속에서 이를 재검증하지 않는 한, 사회의 혼란은 계속된다.

그래서 몽테뉴로 대표되는 또 하나의 개인주의는 사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주 독립적인 선악의 판단에 근거하여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개인에게 요구한다. 이 윤리적인 개인주의가 로크류의 경제적 개인주의와 혼동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무역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는데, 이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1) 우선, 무역은 오래도록 경제 활동에 있어서 주변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2) 민중은 늘 안정적인 지역적 자급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민중이 무역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든지, 자급하고 있던 민족이 그 비참함을 견디다 못해 무역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3) 무역은 어디에서든 부와 권력을 가진 특권층에 의해 특권의 유지와 확대를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이 자급에서 무역으로 제제를 전환한 사태이다. (4) 현대무역의 특징은 생활양식의 끊임없는 파괴와 거기에 기인한 시장의 무한한 확대에 있다. (5) 또한 이 무역은 공동체나 자연에 의해 제약받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욕망의 극한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개인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와 일체화되어 있다. 필요한 물자의 호혜적인 교환은 이 무역의 본래 목적이 아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 무역 체제의 완성


영국은 세계 무역을 통해서 스스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대상업 제국을 만들었지만, 영국이 경험한 시행착오의 성과를 의식적으로 계획하여 추구한 것은 미합중국이었다. 오늘날의 세계 무역 체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설계하고, 그 패권에 의해 세계에 강제한 것이다.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것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세계적인 무역 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였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IMF, 세계 은행,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의해 보완되는 브레튼우즈 체제로 실현되었다.

이 체제 밑에서는 460달러에 금 1온스의 가치로 달러 가치가 고정되고, 각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를 기준으로 정해짐으로써 국가 간의 무역에서 아무런 지장 없이 달러로 결제가 이루어지게 되어서 세계의 무역량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IMF나 세계은행의 역할도 그저 외환시장의 안정과 후진국 원조가 아니라 미국식 경제성장의 논리에 세계를 편입시켜서 성장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 무역을 달러로 결제한다는 것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여 달러를 벌어들일 능력이 없는 나라는 세계 무역에 참가하지도 못하고, 석유와 같이 전략적 자원의 수입도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후 세계 경제에 있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격차를 비롯한 많은 왜곡 상황을 초래했다.

오로지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나라의 정황에 맞는 균형 잡힌 국토와 경제방식을 희생시킨 극단적인 예가 전후 한국과 일본의 경제 발전일 것이다.

냉전 때문에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지역 무역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점이나 전전(戰前)부터 인구과밀의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후 일본의 미국 일변도 수출 경제는 역시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전무한 작은 섬나라가 미국을 능가하는 자동차 생산국이 되는 한편,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계 제3위의 원유 수입국이 되고, 또 식량 자급률은 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에 세계 최대의 식량 수입국이 되어 버렸다. 이는 세계에서 그 예를 보기 힘든 미국 중심 무역 체제에 대한 과도한 적용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또 한국, 일본 사회나 문화의 미국화, 원유 대량 소비형 미국식 생활양식에 대한 과도한 적응이기도 했다.

그러나 원유와 식량의 가격 상승이 이어지는 현재, 한국, 일본의 번영을 지탱해 온 조건들은 소멸하고 있다. 당장은 중국과의 무역이 일본 기업을 지탱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중국은 국가 정책으로 개방 정책을 취하고 있을 뿐, 예전의 미국처럼 세계 무역을 유지한다는 의식이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경제 대국에서 생활 소국으로 과감하게 체제를 전환하는 것 외에는 미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브레튼우즈체제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곳은 남측의 신홍독립국들이었다. 미국은 이 체제를 통해 자국에서만 통용되는 경제 성장 논리를 남측 나라들에 강제해 왔다. 근대화를 위한 자본이나 기술이 없는 남측 나라들은 IMF의 융자나 세계은행의 원조에 의지하여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구미형 경제성장을 위한 조건이 구비돼 있지 않은 나라들에서 그런 융자나 원조가 결실을 거두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하여 남측의 세계는 유복해지기는커녕 부채에 늘 시달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세계 무역의 종언: 식량 주권과 민주주의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식량 위기는 미국 주도의 세계 무역 체제의 궁극적인 귀결이다. 예를 들어, 독립 당시에는 식량을 수출했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지금은 전체적으로 식량의 1/4을 수입하고 있다. 그렇게 된 주된 이유는 부채에 고통받는 나라들에 대한 IMF와 세계은행의 '은행관리'이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색채를 강화한 이 두 조직은 세계에 선진국형 공업을 모델로 한 농업을 강제하여 대규모 농지에 수출용 환금 작물의 재배를 장려했다. 이에 더해 GATT 체제 하의 농산물 무역 자유화 때문에 정부의 원조를 받은 값싼 구미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 지역에서 가족 농업에 종사하는 자작농민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IMF와 세계은행의 경제 전문가들은 농업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가족 농업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식량 위기는 그저 식량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엘리트들의 세계 무역 논리와 민중의 지역적 자급의 논리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식량 위기는 중대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상황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시작된 세계 무역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쇠퇴에 따라 달러가 폭락하고 있음에도 유로나 위안화가 달러 대신 세계 무역의 결제 통화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자유 무역은 끝나고, 무역은 국가 간의 수시 협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그 본연의 형태를 되찾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앞으로도 원유의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대량의 상품을 신속하게 원거리로 운송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점점 더 곤란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원유가 1배럴에 200달러가 되면 중국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그리고 식량 위기와 원유 가격의 폭등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다시금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원칙의 중요성을 일깨워, 선진국에서도 가정에 텃밭을 만들거나 지역 시장에서 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작은 텃발에 불과하지만, 이도 인류가 기본적인 생활 물자를 지역에서 자급한다는 예로부터의 상식으로 돌아가기 위한 작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 무역의 종언을 예감하게 되는 것은 GATT 대신에 세계 무역의 원칙을 보다 철저하게 구현시키기 위해1995년에 창설된 WTO(세계무역기구)의 도하라운드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대립으로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WTO의 목표는 관세의 전 세계적인 일괄 인하에 있는데, 이번 7월에 제네바에서 열린 153개 가맹국의 교섭은 완전히 결렬되어 재개될 전망조차 불투명하다. 결렬의 최대 원인은 정부 원조를 받는 선진국의 과잉 농산물이 대량으로 유입되면 자국의 영세 농민들에게 타격을 입힌다는 이유로 인도가 긴급 수입 제한제의 운용을 주장하면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섭에서 중국이나 브라질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역의 영역에서는 북측의 선진국이 남측의 개발도상국에 제멋대로의 규제를 강요하는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IMF와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는 자유 무역은 약육강식의 다른 이름이라는 인식을 세계에 확산시켰고, 그것이 WTO를 좌절시켰다고 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격렬한 저항의 배경에는 남북을 불문하고 역사를 통해서 세계 무역의 최대 희생자였던 자작농과 선주민이 국경을 넘어서 협력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있다. 그 목소리를 대표하는 것이 1992년 온두라스에 본부를 두고 창설된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이다. 비아캄페시나는 세계 각지의 자작농, 선주민, 농촌 여성, 어민들로 된 백 개 이상의 조직이 연합한, 회원 수가 1억 5천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민간 조직이며, 창설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종래의 식량 안보 대신에 비아캄페시나가 주장하는 식량 주권 원칙을 헌법 조항으로 삼는 나라도 생겼다. 식량 주권이란 국제 시장에 좌우되지 않고 인민이 자신의 먹을거리나 농업 방식을 스스로 정의하는 권리이다. 농산물을 단지 상품으로 유통시키는 무역 자유화나 현지 자작농의 존속을 곤란하게 만드는 식량 원조 등은 주권 침해에 해당된다. 나아가서 그것은 식량과 관련하여 국토나 식문화의 존재 방식에까지 걸친, 자신의 독자적인 생활 양식을 선택하고 지킬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생활 양식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세계 무역에 대한 근원적인 반대인 것이다.

이 비아캄페시나의 요구는 자급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제는 농민 이외의 사람들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원과 물자를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활양식에 관련한 지역 주민의 자치에 있다. 따라서 무역과 자급을 둘러싼 논의는 최종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최용대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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