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시간

나라 전체가 잠시 숨을 죽인 사이, 수능시험이 끝났다. 국내 언론의 저녁 뉴스들은 일제히 수능에 대한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어떤 과목이 쉬웠고 어려웠으며, 어떤 과목에서 몇 점을 맞으면 몇 등급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인용했다. 해외 언론들은 사뭇 다른 관점에서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의 한 언론은 '한국의 명문대 진학은 사회적 지위, 성공적 커리어, 심지어는 결혼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도했다. 수능은 사회의 구조적 난제를 번번이 극적으로 상기시킨다.
사회의 견고한 구조 앞에서 개인은 대체로 무력하다. 수험생들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때 개인의 지향보다 대학과 전공의 서열을 우선시하는 만큼, 수험생 개인은 희미해진다. 12년의 정규 교육과정 동안 스스로의 지향에 대해 충분히 사유하지 못하면, 내 기준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따라 내 길을 선택한다. 그 확신 없는 선택의 결과, 많은 대학생들이 다시 N수생으로 되돌아오거나 '대2병'을 겪게 된다. 적극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끝없이 반복될 인생의 갈림길에서 계속 머뭇거리지 않으려면,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유해야 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사유는 개인을 구원할 수 있다.
사유가 개인만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업의 본질을 고민하는 조직에도 사유가 필요하다. 기업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사유하게 되면 의사결정이 달라진다. 경영학 문헌에 따르면, 기업의 경영철학이 분명할수록 투자의 효율성이 높고, 재무 성과가 우수하며, 자본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업가치도 높다. 코로나19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에서도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사회를 구원하는 사유가 흐르는 공간이 대학이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사회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국제연합(유엔)의 1987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 사회는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이다. 미래 세대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의 지향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곳이 대학이다. 지구 온난화, 탄소 저감, 친환경에너지 개발과 같은 환경 이슈부터 인구구조의 변화, 건강, 복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해결책의 실마리가 모색되는 곳이 대학이다. 지속가능 사회의 전망은 대학의 학제 간 교류와 융합을 통해서만 가늠해볼 수 있다. 사회는 이 대체 불가의 기능을 위해 대학에 공적인 자원을 공급한다.
대학의 사유가 후속 세대에게 어떻게 계승되는지도 중요하다. 수월성 교육도 중요하지만, 형평성 교육도 중요하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사유도 필요하지만, 망치처럼 뭉툭한 사유도 필요하다. 교육 주체들의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면, 생산되고 전수되는 지식의 편향은 피할 수 없다. 편향된 지식으로 부와 계급의 재생산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만큼, 대학의 사유는 희석된다.
불확실성의 시대, 개인과 조직과 사회가 함께 지속가능하기 위하여 좋은 사유가 절실하다. 우리의 사유가 미치는 곳까지, 우리는 지속가능할 것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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