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싸움의 방법

오래전 선거 유세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경기도의 한 시골 장터 앞이었는데, 두 명의 젊은 주부가 장을 보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짜증을 냈다. 그중 한 사람이 내 쪽을 바라보며 “시끄러워라. 싸움들 좀 하지 말 것이지”라고 했는데,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인간의 정치에서 싸움과 갈등은 없앨 수 없다. 현실주의 정치철학의 냉정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란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처리해 사회가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로 퇴락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를 ‘갈등을 둘러싼 갈등의 체계’라고 정의하고, 그것의 민주적 성격을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인간사에서 공적 선택을 둘러싼 갈등은 제거될 수 없다. 모두가 동일한 의견을 갖도록 하거나 모두를 이타적 존재로 바꿀 수도 없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들 사이의 불완전한 상호이해는 인간의 정치가 갖는 고질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러한 불일치와 불완전한 이해는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의 길을 방해하는, 단지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갈등을 없앨 수는 없으나 줄일 수는 있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조차도 다루기에 따라서는 조정 가능한 공통의 의제로 만들 수 있다. 차이를 없앨 수는 없어도 서로에게 구속력을 갖는 정당한 절차와 과정에 합의할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시골 장터에서 만난 두 시민의 불만은 정당들이 싸우고 갈등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성과 없는 소모적 싸움을 주로 해온 그간의 한국 정치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이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 파당을 대화불능자로 규정하곤 한다. 때로 그것은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에게 자신이 주장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데 있어 게으르거나 불성실하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이자 정치철학자인 에이미 거트먼이 강조하듯 갈등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정치 역시 일정한 규범성을 필요로 한다. 우선 반대편의 입장을 규정하는 데 있어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주장을 개진하는 것이 정치적 싸움의 일차적 규범이 돼야 한다.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파당과 내가 속한 파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논의를 해도 문제가 남게 되고 그것이 오해의 산물로 볼 수 없는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때는 반대편과 조정을 추구해야 한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최근 종편 채널이 주도하는 정치담론을 지켜보면서 그들이야말로 정치에서의 싸움을 온통 게임의 언어 혹은 이해관계나 전략의 문제로 환원하는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정치담론이 유해한 것은 그들이 단지 싸움과 숨겨진 이해관계와 파당적 전략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정치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냉소 혹은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공적 논쟁을 잘 이끈다면 사안에 대한 명료한 이해와 더불어 공통의 이해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적 싸움의 절차와 규범을 준수해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에 도달함으로써 상호 조정과 협동하는 것이 서로 갈등하기만 하는 것보다 유익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싸움과 갈등, 파당적 이해관계와 전략적 고려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 때문에 정치란 늘 파당적 싸움에 골몰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세계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견을 통해 배우고 서로 연결된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민주적 전망을 폐쇄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에서 싸움을 피할 수는 없으나 잘 싸울 수는 있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에 바라건대, 싸우되 제발 잘 싸워 달라.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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