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플라스틱시대

인간은 약 450만년 전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자유롭게 된 두 손을 사용해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일궈냈다. 우리는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인류문명사를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를 ‘플라스틱 시대’로 명명하지 않을까. 넘쳐나는 플라스틱과 쓰레기로 남은 그 잔해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드는 우울한 생각이다.
인도네시아 와카토비 국립공원 안의 카포타섬 해변 인근에서 몸길이가 9.5m에 달하는 향유고래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고래 뱃속에서 나온 것은 플라스틱컵 115개를 비롯해 하드 플라스틱 19개(140g), 플라스틱병 4개(150g), 샌들 2개(270g), 플라스틱백 25개(260g), 나일론 가방 1개, 기타 플라스틱 1000여 개로 무려 6㎏에 달했다. 쓰레기 하치장이 된 고래의 위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우리 바다라고 예외가 아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자료에 의하면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의 뱃속에서는 500㎖짜리 빈 플라스틱 생수병이 나왔다. 어민들은 평소에도 물고기 뱃속에서 플라스틱 소주 컵과 비닐봉지 등 각종 환경 쓰레기를 발견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 말했다.
잠에서 깨면 바로 찾는 스마트폰부터 칫솔, 일회용컵과 다양한 포장용기 그리고 신용카드와 신분증 등 플라스틱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배달앱을 통한 음식 주문량이 늘면서 플라스틱 패키지의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자원순환연대의 현장조사 자료에 의하면 분식 3인분에 평균 20개의 플라스틱 포장용기 등이 사용되어 가히 일회용품에 중독된 ‘배달왕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배달앱을 통한 주문이 하루 100만건이라니 최대 2000만개 플라스틱 폐기물이 나올 텐데 정부는 실태 파악도 못한 상태이다. 미약하나마 커피전문점 컵만 규제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어림없다.
독성물질을 품은 트로이 목마, 이런 플라스틱을 누가 원하는가?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탄화수소로 만드는데 석유는 독성 물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유독성을 갖는다. 게다가 점성으로 주위의 유독물질을 빨아들여 함께 움직인다. 통째로 삼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파도에 의해 잘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을 물고기가 삼키고, 결국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 체내에 유입되면서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일회용을 위생과 동의어로 믿었고 생산업계는 잘 팔리니 많이 만들었고 감독해야 할 정부는 미처 실태 파악을 못한 와중에 고래와 아귀들이 몸 바쳐서 플라스틱의 해악을 증거해준 셈이다.
자, 이 플라스틱들을 어찌해야 하나. 지니를 램프 속에 도로 넣을 방법이 없을까? 재활용은 가식적 행동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열심히 분리수거하지만 플라스틱 종류가 5만종에 이르러 단일물질로 뭉쳐질 수 없기 때문에 재활용은 비현실적이다. 재활용 선진국 네덜란드나 독일에서도 30년 이상 투자했지만 재활용 비율은 10%도 안된다. 독일에서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를 처리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소각이나 다른 방식의 열처리를 한다. 그런데 소각할 경우 대기오염에 더 나쁜 이산화탄소, 다이옥신, 푸란 등이 나온다. 그래서 석유정제와 비슷한 화학적 재활용을 하기도 한다.
결론은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것이 유일한 길인데 우리 현재 삶의 방식은 불가역적이라 안 쓸 수가 없다. 많은 환경운동이 쓰레기 버리지 마라, 재활용하라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과연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이상적으로는 생산자의 책임을 확장해서 기업이 경제적으로 회수할 수 없는 물건을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완전히 분해되는 플라스틱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산업계는 환경규제를 마치 태극기를 불태우는 일처럼 호들갑스럽게 경계하지만 플라스틱의 해악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인 레고는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했던 로열 더치 셸과의 제휴 관계를 종료하고 석유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에서 탈피하기 위해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다행히 많은 나라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의 장인과 청년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개발해 놓거나, 대체재를 찾고 있다. 문제는 시장인데 상대적으로 높은 단가 때문에 상용화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단 전기차나 태양광처럼 초기에 정부가 지원하고 법률로써 규제해서 3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플라스틱의 해악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은 고래지만 내일은 사람이니까.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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