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삼월의 마산, 민주주의의 봄을 기억하다_ 청계 이상석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3-08 14:09


3.15의거탑 (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31)


삼월이 오면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풀리고, 뭇 생명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귓볼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 속에서 도시는 긴 잠에서 깨어난다. 항도 마산 역시 봄의 숨결과 함께 천천히 기지개를 켠다. 그러나 마산의 삼월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에게 삼월은 민주주의의 기억이 살아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은 더 이상 조용한 항구 도시가 아니었다. 물 좋고 인심 좋다고 하여 ‘과부명당’이라 불릴 만큼 살기 좋던 이 도시는 그날 거대한 민주화의 함성과 열기로 들끓었다.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와 독재에 맞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억눌려 있던 울분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훗날 3·15 의거라 불리게 되는 역사적 항거의 시작이었다.


당시 여섯 살의 어린아이였던 필자에게도 그 장면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섯 살 위 형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길에서 마주한 것은 낯선 풍경이었다. 시청 앞 거리와 장군천 일대는 총성과 함성으로 뒤섞여 있었고, 최루탄 연기가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치마폭에 철로변 자갈을 담아 나르고, 청년들은 그것을 집어 들어 “독재 타도”를 외치며 돌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던 총성과 최루탄 소리는 봄밤의 꽃향기를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김주열 열사 동상(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220)


며칠 뒤, 행방불명된 학생을 찾기 위한 수색이 이어지던 가운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마산 앞바다에서 한 학생의 시신이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몰려간 그곳에서 발견된 이는 마산 상고 신입생이었던 열여섯 살의 소년, 김주열이었다. 그의 눈에는 최루탄이 박힌 채였다. 그 참혹한 모습은 시민과 학생들의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고, 마산의 항거는 더욱 거세게 번져갔다.


그 시절의 기억 속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남아 있다. 이웃집에 살던 청년이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통곡하던 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 “영호야, 영호야…” 하고 부르짖던 그 절규는 어린 마음에도 깊은 흔적으로 남았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뒤에는 이렇게 평범한 시민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프랑스 사상가의 말처럼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마산의 삼월이 바로 그런 역사였다. 이 항거는 이후 전국으로 번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를 흐리게 하려는 시선들도 나타난다. 마치 다른 곳에서 시작된 일인 양 역사를 흐리거나, 마산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주장도 들려온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유당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선 최초의 대규모 시민 항거가 바로 마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3·15 의거는 민주화의 성지 마산에서 피어난 역사이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오늘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날 형들과 누나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의 나무는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는 과연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삼월이 오면 마산의 봄바람 속에는 여전히 그날의 함성이 스며 있는 듯하다. 꽃잎처럼 산화한 젊은 영혼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서 있기 때문이다. 숭엄한 삼월, 우리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묻는다. 그리고 조용히 기억한다. 민주화의 발상지 마산에서 피어났던 3·15 영령들의 뜻을.


김주열 열사 시인 인양지(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2



빙하를 뚫는 봄


청암 배성근


낭창낭창 청솔가지 밑에

겨울이 덮어버린 눈 속으로

목놓아 지저귀는 새는

치마폭에 감싸던 자식을 그린다

허공에 바닷물마저 얼어붙인 바람은

무척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빙하를 뚫고

따사로운 봄 찾아 흘러간다.

바짝 마른 가지 끝

빨갛게 익은 단풍인들 남았을까

겨우내 언 땅 위에

그들의 입술에 핀 꽃인들 남아 있을까

적막이 흐르는 감천 골짝은

무학산 능선을 따라 넘어도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때 그 외침마저도

봄을 찾아 흐르는 개울물 소리에 묻혀

귀 울림도 미미하게 들릴 뿐이다

마산부두 모퉁이

그의 모습은 아직

자율 교복도 입지 않고 있다

봄은

빙하를 뚫고 오고 있는데


— 김주열 시신 인양지 앞에서



청계 이상석 시인 · 수필가(경남 창원시 마산 창동)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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