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⑥] 두륜산 대흥사 동백과 놀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15 22:37

차와 선은 하나의 맛, 차 한 잔이 천 권의 책보다 낫다

대흥사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봄이면 절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

다 읽혀지지 않아도 동백꽃은 동백꽃

읽다 보면 자주 눈물이 나기도 하지

전남 해남의 두륜산 자락 대흥사에 동백이 절정이다.전남 해남의 두륜산(頭輪山) 자락, 깊은 숲길을 따라 오르면 천년 고찰 대흥사(大興寺)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승려와 학자들이 머물며 법맥을 이어온 이곳은, 단순한 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유서 깊은 불교문화재와 장엄한 산세 속에서 대흥사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공간이 되어 왔다.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대둔사(大芚寺)’ 혹은 ‘한듬절’이라고도 불린다. 


‘한듬절’은 ‘대둔사’의 옛말 표현이다. ‘대둔’을 옛날식 발음으로 부르면서 ‘한듬’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는 ‘큰 언덕(듬)’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즉, ‘한듬절’은 ‘대둔사’의 토착적이고 구어적인 표현으로, 지역민들이 불렀던 옛 이름으로 보인다.


2009년12월에 대흥사는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그 주변 두륜산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2018년 6월에는 통도사 · 부석사 · 봉정사 · 법주사 · 마곡사 · 선암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 생각한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초의선사와 추사는 같은 해(1786년)에 태어난 동갑으로, 학문과 예술, 선(禪)과 차(茶)를 매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초의선사는 그를 걱정하며 차와 편지를 보내 위로했다고 한다.


추사는 붓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차 한 잔이 천 권의 책보다 낫다”는 말을 남긴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학문과 예술을 존중하며 서신을 주고받았고, 초의선사는 추사에게 다도(茶道)의 깊은 철학을 전수하기도 했다.



김정희가 유배에서 풀려난 후, 초의선사가 그를 위해 직접 만든 차를 선물했다는데 이에 감동한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다선일미(茶禪一味, 차와 선은 하나의 맛이다)”라는 유명한 글씨를 써서 보냈다. 이 말은 “다도(茶道)와 선(禪)이 결국 같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이후 한국 다도의 중요한 철학이 되었다.


대흥사는 넓은 산간분지에 자리 잡은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원과 남원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다.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징이다.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表忠祠) 구역과 동국선원 내에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대흥사에는 국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비롯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 비취옥발과 서산대사의 친필, 교자, 신발 그리고 금과 은으로 쓴 불경 등 총 24종의 유물이 있다.



대흥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봄이면 절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나무들이다. 절 입구에서부터 경내 곳곳까지, 동백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륜산의 바람을 맞으며 오롯이 피어난 동백들은 절의 고요함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의 동백은 여느 동백과 다르게 더욱 탐스럽고 붉다. 마치 비밀을 간직한 듯 가지에 달린 꽃송이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다 이내 한순간에 뚝 떨어진다. 꽃잎이 하나씩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송이째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모습은 어느 한순간도 붙잡아둘 수 없는 인생의 덧없음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동백꽃의 추락을 온전히 해독할 수 있으랴

고통의 질량과 무게는 다 다를 뿐이라는데

누가 누구의 동백꽃 제대로 읽어낼 수 있으랴


다 읽혀지지 않아도 동백꽃은 동백꽃

읽다 보면 자주 눈물이 나기도 하지”


ㅡ김현옥 「노안의 독서」 중에서



동백은 너무 일찍 피는 꽃이다. 겨우내 얼었던 그것들은 고통 속에 왔다가는 고작 꽃샘추위를 견디다 갈 때도 모지락스럽고 격렬하게 진다. 


그래서 김현옥 시인은 “다 읽혀지지 않아도 동백꽃은 동백꽃/ 읽다 보면 자주 눈물이 나기도 하지”라고 애절한 표현을 남겼다. 나태주가 동백꽃 진 자리를 일러 “허공에 피멍 하나 걸렸을 뿐”이라고 노래하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흥사의 동백은 단순한 봄꽃이 아니다. 그것은 유배지에서 고통받던 이들이 바라보았을 꽃이었고, 시인들이 사랑과 이별을 읊으며 눈길을 주던 존재였다. 때로는 충절의 상징으로, 때로는 덧없는 사랑의 은유로, 동백은 시대를 넘어 수많은 이야기와 함께 살아왔다.


봄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절 마당은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꽃송이들로 뒤덮여 있다. 어느새 떨어진 꽃들이 길을 만들고, 그 위를 걷는 발걸음마다 가볍고도 묵직한 감상이 스며든다. 그렇게 대흥사의 동백은 피고 지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지지 않는 꽃으로 남는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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