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⑱] 내 청춘이 막 시작됐을 때 만난 여인 《닥터 지바고》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19 13:49

라라, 당신 이름을 부르기가 두려워,

내 영혼이 당신의 이름과 함께 빠져 나갈 것아

영화《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닥터 지바고》는 최근《사이펀》창간 1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시인들이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혔다.



3월


유리 지바고


태양은 땀투성이로 무덥고

골짜기 마을은 광기어리게 들떴다.

건강한 소몰이 아가씨처럼

봄일은 손아귀에서 바빠진다.


눈이 녹아 빈혈을 앓고

앙상한 가지가 힘없이 푸르렀다.

그러나 외양간에는 생명이 솟아나고

갈퀴의 이빨이 건강하게 빛났다.


이러한 밤, 이러한 낮과 밤!

한낮의 처마 밑에 비가 뿌리고

가느다란 고드름이 처마에 매달리고

밤새도록 시냇물은 재잘거린다.

모든 것이 열렸다, 마구간도 외양간도.

비둘기는 눈 속에서 귀리를 쪼는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이며 생명을 주는 자

그것은 신성한 공기를 풍기는 거름더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소설 Doctor Zhivago의 영어판 표지

봄의 힘과 생명의 리듬을 풍부한 자연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소설 《닥터 지바고》안에 나오는 작품이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번역가였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가 1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 소설에는 시(poems)들이 포함되어 그 자체가 하나의 시집처럼 읽히는 부분이 있다. 


이 시들은 주인공 유리 지바고가 쓴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전체 25편의 시가 작품의 마지막 챕터(17장)로 실려 있다. 이 시들은 러시아 혁명기와 개인의 내면, 자연과 사랑, 신앙 등을 테마로 한다. 여러 시가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계절적 순환을 따라 배치되어 있어, 삶의 변화와 감각적 이미지, 철학적 사유를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번역가였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가 1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 소설은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과 주변인들을 모델로 하여 썼다고 한다. 지바고는 본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고, 지바고의 아내 토냐는 그의 두번째 부인을, 지바고의 애인 라라는 올가 이빈스카야라는 그의 내연녀를 모델로 하였다.


영화《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내가 태어난 해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며 베스트 셀러였던 닥터 지바고라는 러시아 소설을 영화로 만든 대작 《닥터 지바고》 를 여러번 봤다. 


십대 때 나는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 매우 인상 깊었던 끝없이 설원이 펼쳐진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 장면과 눈 덮인 별장 장면을 보면서 러시아 평원의 광활한 설경에 매료된 나머지 닥터 지바고처럼 시인 되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게 됐다.


그때 《닥터 지바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창문 밖으로 엄청나게 눈이 내리는 설경을 배경으로 미친듯이 시를 쓰고 싶었다.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기타리스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모리스 자르(Mourice Jarre/Morris Jarr)라는 거장 음악감독이 작곡하였다는 라라의 테마(Lara’s Theme)라는 영화 주제곡을 틀어놓고 창문 밖으로 쏟아져내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탁터 지바고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길에 등불이 켜져 있었다. 창가에 촛불 하나가 타고 있었다. 그 촛불은 마치 누군가의 영혼이 

밖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영화《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꿈을 꿨다. 낯선 아파트에 낯선 여자랑 살고 있었다. 자기가 내 아내라는 그 여자를 곰곰 살펴보니 전혀 낯선 얼굴은 아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연인 라라(줄리 크리스티)를 쏙 빼닮았다. 라라는 “먼 옛날 내 유년 시절의 평화로운 하늘 아래서” 내 청춘이 막 시작됐을 때 만난 여인이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밤이면 밤마다 만나서 사랑을 나누던 나의 첫사랑이다.


작은 입술이 너덜너덜 해지도록 연일 키스도 하고 그녀를 끌어안고 꿀잠을 잤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세기 가까이 세월이 지나서 라라가 내 아내가 되었다니.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반갑기는커녕 서먹하기만 했다. 진짜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이 드는 순간 잠에서 깨버려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


“라라, 당신 이름을 부르기가 두려워, 내 영혼이 당신의 이름과 함께 빠져 나갈 것아” 


닥티 지바고처럼 나도 라라를 찾아 헤매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던 한때가 있었다. 


그때 닥터 지바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창문 밖으로 엄청나게 눈이 내리는 설경을 배경으로 미친듯이 시를 쓰고 싶었는데 마치 어릴적에 내 소원을 풀어주겠다는 듯이...연희창작촌에 갔을 때 유난히 눈이 자주 왔다. 뜻밖에도 연희에 와서 소시적의 꿈을 이루게 된 셈인데 라라는 아직 찾지 못했다. 


영화《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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