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보는 일
떨어지는 꽃잎, 멀어지는 기차, 어둠 속에서 희미해지는 불빛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초속5센티미터》한 장면.정오의 벚꽃
박이화
벗을수록 아름다운 나무가 있네
검은 스타킹에
풍만한 상체 다 드러낸
누드의 나무
이제 저 구겨진 햇살 위로
티타임의 정사가 있을 거네
보라!
바람 앞에 훨훨 다 벗어 던지고
봄날의 화폭 속에
나른하게 드러누운
저 고야의 마야부인을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실사 영화 한 장면《초속5센티미터》
올해 벚꽃은 유난히 서둘렀다. 따뜻한 겨울과 갑작스러운 고온이 꽃의 시간을 재촉했다. 꽃은 피어나는 날짜를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기온의 문장을 따라가며 예정보다 빠르게 문을 열고, 예정보다 빨리 문을 닫는다. 사람의 마음은 아직 겨울의 문장 속에 있는데 꽃은 이미 봄의 끝을 지나고 있다.
벚꽃은 피어 있을 때보다 질 때 더 많은 사람을 거리로 부른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라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존재의 밀도가 짙어진다. 꽃은 떨어지는 동안 완성되는 풍경이다.
낙화는 끝이 아니라 이동이다.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는 나무의 시간이지만,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바람의 시간이 된다. 꽃잎은 자신의 시간을 버리고 공기의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그 문장을 읽으며 지나온 시간의 표정을 떠올린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센티미터라고 한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느린 속도지만, 느림이 쌓이면 결국 닿을 수 없는 거리가 된다. 《초속5세티미터》는 바로 그 느린 속도의 이별을 이야기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7년작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초속5센티미터》포스터급격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다만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멀어지게 만드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영화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벚꽃 이야기」에서 소년 타카키와 소녀 아카리는 어린 시절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였지만, 부모의 이사로 인해 떨어지게 된다. 기차를 타고 눈 덮인 밤을 지나 서로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만든다. 사랑은 여전히 가까이 있지만, 현실은 이미 두 사람을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날 밤의 만남은 약속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이별의 예고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이야기 「우주비행사」에서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 타카키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인물 가나에가 등장한다. 가나에는 가까이에 있지만 끝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사랑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누군가에게는 현재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미 과거형이 된다. 영화는 고백하지 못한 마음이 어떻게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지를 보여준다.
세 번째 이야기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어른이 된 타카키가 등장한다. 도시의 풍경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과거의 시간을 되짚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사랑은 사라졌다기보다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다.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현재의 시간을 자꾸만 늦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초속5센티미터》한 장면.이 영화의 특징은 거대한 사건 대신 아주 작은 흔들림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문자 메시지 하나, 기차가 지연되는 시간, 눈 내리는 밤의 침묵 같은 장면들이 서사를 만든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관계의 균열이 얼마나 조용히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초속 5센티미터라는 말은 단순한 물리적 속도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서로를 잃어가는 체감의 속도다. 너무 느려서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이미 멀어져 있다. 영화는 그 느린 속도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떨어지는 꽃잎, 멀어지는 기차, 어둠 속에서 희미해지는 불빛 같은 장면들이 마음의 거리를 대신 말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이 자주 다루는 주제는 시간과 거리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같은 장소를 지나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사람들. 그는 기술과 속도가 빨라진 시대에도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느리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음은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도착한다.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연락이 점점 뜸해지던 시간, 답장을 망설이던 밤, 더 이상 같은 계절을 공유하지 못하게 된 순간들. 특별하지 않은 경험들이 영화 속에서는 하나의 풍경이 된다. 관객은 자신의 시간을 영화 속에 겹쳐 보게 된다.
《초속 5센티미터》는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마음의 일부는 언제나 지나온 시간에 머문다. 영화는 그 머무름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머무름이 현재의 우리를 만든다고 말한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바라보는 일은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보는 일과 닮아 있다.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초속 5센티미터》의 감성은 결국 기억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은 끝났지만, 사랑을 바라보던 시선은 오래 남는다.
초속 5cm의 봄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꽃잎이 떨어지는 동안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것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떨어지는 장면을 기억할 수는 있다.
실사 영화 《초속5센티미터》도 나왔다. 일본에서 작년 10월에 개봉하고, 국내에서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 상영으로 관객들을 미리 만났다. 지난 2월 28일 국내 개봉 이후 관객들에게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실사 영화《초속5센티미터》포스터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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