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화양읍에 ‘떡절’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사찰
청도읍 쪽에서 바라본 주구산은 달리는 개의 형상
개가 떡을 먹느라 달리지 못하도록 절을 세웠다는 설화
떡절*
박상봉
청도 화양 북쪽 주구산 아래 떡절이 있다
개 한 마리 허공 박차고 달아나는 산세(山勢)
물길 돌아앉은 절 이름 속에 아직 쑥떡 냄새난다
아랫말 사람들은 말을 크게 하지 않고
입 안에 말끝 조금씩 접어 넣으며 저녁을 넘겼다
떠난 사람 돌아오지 않는데 고무신만 문간을 오래 떠나지 못하고
저녁밥 짓는 연기 사람보다 먼저 취해 마을을 떠돌았다
새벽이면 떡메 소리 쿵, 쿵, 산 아래로 번져갔다
달아나는 개의 입을 붙드는 소리였을까
절 마당 감나무 그림자도 그 소리에 몸을 떨었다
물길은 천변에 발목 씻고 돌아나갔다
떡메 소리 지금도 귀 안쪽에서 문풍지처럼 운다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덕사(德寺·떡절) 설화에서 따옴.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에 ‘떡절’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사찰이 있다. 공식명은 덕사(德寺)다. 청도 화양 북쪽으로 돌아앉은 산 멀리서 보면 개 한 마리 허공을 박차고 달아나는 형상이다. 이름마저 숨 가쁜 주구산(走狗山) 골짝 아래 ‘떡절’이라는 절이 있다. 한낮이면 바람이 돌계단 쓸고 지나가고 처마 끝 풍경 소리 가볍게 흔들린다. 물길 돌아앉은 절 이름 속에는 아직도 떡 냄새가 난다. 겨울 저녁이면 산 그림자가 먼저 마을로 내려와 무릎 덮어준다. 감나무 검붉은 잎사귀 밟고 닭들이 발자국 찍으며 지나가고 우물가 얼음장 밑에서 물소리가 낮게 숨 고른다.
‘떡절’이라는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절 이름이라기보다 누군가 장난처럼 붙여놓은 별명 같다. 그러나 경북 청도 화양읍 주구산 자락에 자리한 ‘덕사(德寺)’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떡절’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청도읍 쪽에서 바라본 주구산(走狗山). 달리는 개의 형상이다.
달리는 개 형상의 산세 때문에 고을의 정기가 빠져나간다고 여겨, 개가 떡을 먹느라 달리지 못하도록 절을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덕사보다 떡절이 먼저 사람들의 입에 남았다.
졸시 「떡절」은 이 전설을 단순히 옮기지 않는다. 시는 설화보다 먼저 떡 냄새를 불러온다.
물길 돌아앉은 절 이름 속에 아직 쑥떡 냄새난다.
이 한 줄에서 떡은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 된다. 절 이름 속에 오래 삭은 생활의 온기가 배어 있다. 전설은 역사책보다 먼저 사람들의 입속에서 발효된다는 사실을 시는 알고 있다.
시 속 사람들은 말을 크게 하지 않는다. 입안에 말을 조금씩 접어 넣으며 저녁을 넘긴다. 고무신은 문간을 오래 떠나지 못하고, 저녁밥 짓는 연기는 사람보다 먼저 마을을 떠돈다. 이 풍경은 떠남보다 남겨짐이 더 익숙한 농촌의 시간이다.
절은 종교 공간이라기보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장소가 된다. 새벽이면 떡메 소리 쿵, 쿵, 산 아래로 번져갔다. 떡메는 떡을 만드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시간을 다지는 소리다. 달아나는 개를 붙잡으려던 떡이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을 붙잡는다. 문풍지처럼 귀 안에서 우는 떡메 소리는 어린 시절, 마을, 공동체가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청각의 풍경이다.
「떡절」은 청도의 한 절을 노래하면서도 결국은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문화와 공동체의 기억을 붙잡는다. 달아나는 시간을 잠시라도 붙잡아 두려 했던 사람들의 오래된 마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시를 다 읽고 나면 귀 안에서는 아직도 떡메 소리가 문풍지처럼 울고, 절 이름에서는 은은한 쑥떡 냄새가 피어오른다.
눈 많이 오는 해에는 감잎마저 검게 얼었다. 그해 겨울 웃집 아들은 구미 전자공장으로 떠났고 건넛집 딸은 부산 신발공장 기숙사로 들어갔다. 빈방에 남은 이불에서는 사람 체온 대신 숯 냄새와 머리카락 냄새만 오래 남아 있었다.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데 고무신만 문간에서 오래 방향을 틀지 못했다. 새벽이면 떡메 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산 아래 잠든 개들이 그 소리에 귀를 세우고 눈 덮인 돌담 위 까치들이 놀라 퍼덕였다.
찹쌀 냄새 김 올라오는 날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공연히 마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장마 지나간 뒤 개울가에 떠내려온 슬리퍼 한 짝과 이름 모를 플라스틱 바가지가 걸려 있었다. 누가 잃어버린 것인지 몰라도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그것들을 치우지 않았다. 떠내려온 것들도 한철은 마을 식구처럼 지냈다. 밤눈 어두운 노인이 감나무 아래 오래 앉아 있다가 희끄무레한 눈꺼풀 천천히 감았다. 산은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얼어붙은 논바닥 위로 달빛만 허옇게 번졌다.
나는 요즘도 가끔 떡절에 간다. 아직 식지 않은 떡 한 덩이 놓여 있는 절. 감 깎던 칼 소리 아랫목 군불 냄새, 달아나는 개의 입을 붙들던 떡메 소리, 아직도 귀 안쪽에 남아 눈 오는 날이면 천천히 문풍지처럼 운다.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덕사(德寺) 범종루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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