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㉟] 벼랑 밭 반 뙈기도 못 가는 놈 거풍하러 간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06 01:00

푸른 숲 나무가 뿜어내는 생기와 정기 받아 마시는 생기 목욕법

바지를 벗어 하체를 드러내고 햇살이 내리쬐는 정상에서 하늘을 보고 눕는 거풍

거풍 擧風


송수권


여름 장마에 누습*이 든

능화판** 문양의 비단 표지表紙 좀 슬은 책들을 꺼내놓고

곰팡이 얼룩을 지우며

가을볕에 책을 말린다


첩첩 산중에 흰 구름이 일 듯

한 장씩 책장을 넘길 때마다

행간들에서 소슬한 바람이 일고

캄캄한 묵향墨香이 코끝에 시리다


축축하게 구겨진 옷가지들을 빨아 널 듯

내 영혼 한 숟갈 표백제처럼 물에 풀린 한나절은

어초장魚樵莊 산굽이를 휘돌아나가는

섬진강 물줄기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당가 감나무 떫은 감들도 단물이 들 대로 들었는지

벌써 뺨들이 붉다


이 가을엔 농부들이 거피擧皮한 알곡들을

지붕 위에 널어 말리듯이

나도 가을볕에 나와 거풍擧風을 하고 섰다

장악원 악공들이 여름내 녹녹해진 북 가죽끈을

소리 없이 죄듯이.


*누습 : 축축한 기운이 스며 있음

**능화판 : 능화는 물풀로서 덩굴이 수면까지 솟아오르며 줄기 끝에서 꽃이 되어 수면을 가득 덮는다. 전통적으로 책표지 문양으로 써왔기 때문에 이에 기인하여 보통 책표지를 능화판이라 한다.


ㅡ송수권 시집 『남도의 밤 식탁』(작가, 2012)


입추 하루 앞둔 6일 사상 초유의 ‘서울 40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 가운데 더위가 끝날 기미가 없다.

서울이 기상관측 120년 가까운 역사상 처음으로 40도를 기록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등 펄펄 끓는 무더위에 치솟은 수은주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가을이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입추(立秋)’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거풍(擧風)과 즐풍(櫛風)이라는 옛 사대부들로부터 내려온 풍습이 있었다. 햇볕 좋고, 동남풍 부는 날 산 위에 올라가 상투를 풀어 머리를 바람과 햇볕에 빗질하는 것이 즐풍(櫛風)이고 하체를 바람과 햇볕에 노출시켜 말리는 것이 거풍(擧風)이라고 했다.

 

즐풍은 방향을 가려서 하였다고 한다. 동풍은 좋지만 서풍이나 북풍에서는 하지 않는 법이라서 그날 풍향을 살펴서 동남풍이 불어야 이 즐풍을 위한 등산을 하였다고 한다. 바람으로 머리 빗질을 한 다음은 거풍(擧風) 단계로 접어드는데, 바지를 벗어 하체를 드러낸 다음 햇살이 내리쬐는 정상에서 하늘을 보고 눕는 것이 거풍이다.


바지를 벗어 하체를 드러낸 다음 햇살이 내리쬐는 정상에서 하늘을 보고 눕는 것을 점잖게 일러 ‘거풍’이라 하였다.

이러한 즐풍과 거풍의 습속은 은폐하고 얽매어 놓았던 생리적 욕구에 대한 심리적 탈출구를 찾는 의미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정기(精氣)을 받는 동작이며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산중에서 하체를 노출해 태양과 맞대면시켰던 거풍 습속은 양(태양) 대 양(성기)의 직접적인 접속으로 양기를 공급받을 것으로 믿었던 유감주술(類感呪術 : 원하는 바와 닮은 대상의 모습이나 행동을 따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속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도 남도에서는 거풍재, 거풍암 등의 지명이 남아있고, 속담에 ‘벼랑 밭 반 뙈기도 못 가는 놈 거풍하러 간다.’라는 말을 보면 거풍 풍습이나 즐풍 습속이 보편화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몸에 거풍이 필요한 그 부분은 가끔 햇볕에 말리고 바람을 쐬어야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밀폐된 곳에 있는 물건은 바람을 쐬어야 한다. 그래야 곰팡이가 생기거나 썩지 않는다. 일례로 시골 어른들이 곳간의 곡식을 가끔 마당에 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볕 좋은 날 바람을 쐰 곡식은 음습한 기운이 제거되어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람 쐬는 일은 예로부터 이어오는 좋은 풍속이요, 그것을 점잖게 일러 ‘거풍’이라 하였다.


풍욕은 프랑스의 의학자 로브리 박사가 창안했다는 설이 있다. 

거풍을 해보면 남성이 뽀송해지고 활기가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은밀한 그 부분은 햇빛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요즘처럼 햇볕 좋은 날, 인근 산으로 가거나 집에서 남들이 보지않을 때 그것을 꺼내놓고 마치 볕에 고추말리듯 선선한 바람에 1시간 정도 노출해 거풍해 보면, 실제로 기운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풍욕은 프랑스의 의학자 로브리 박사가 창안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풍욕을 ‘로브리요법(Laubry Therapy)’ 또는 ‘대기요법(大氣療法)’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를 ‘니시 건강법’으로 개량하여 세계 최장수국 일본의 무병장수 비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풍욕의 유행 때문인지 프랑스는 누드 해변과 누드 캠핑장 등 나체가 허용되는 공공장소가 유난히 많다. 이 때문에 관광 수익도 엄청나게 올리고 있다는데 매년 프랑스를 찾는 나체주의 관광객만 5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동쪽에 위치한 뱅센 숲(Bois de Vincennes) 공원 내에 지정된 나체주의(자연주의) 구역.독일 뮌헨의 이자르강 상류 플라우처 다리 부근에도 나체족들의 천국이 있고 호주에도 나체족 해변이 있다. 


MBC는 특집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마지막 원시의 땅’에 공개된 바 있는 브라질 북부 파라(Para)주에 문명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최후의 원시부족 ‘조에’는 지금도 나체로 살아가는 나체족이다. 아마존의 거대한 밀림 속에서 문명이 흉내낼 수 없는 원시의 삶을 살아가는 조에족은 거추장스러운 세상사를 다 내려놓은 채 발가벗은 몸으로 홀가분하게 살아간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토스는 “여자가 옷을 벗어버리면 부끄러운 마음마저도 벗어 버린다”고 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나체는 인간이 ‘최초의 의상’을 입은 상태”라 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아담과 이브는 발가벗은 몸이었다. 순수하고 성스러운 것이 나체이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벗은 걸 느끼지 못했고 수치심이 없었다. 


거풍은 음력 9월 9일(重九日) 전후로 이뤄졌다. 이때가 되면 선비들은 점심을 먹은 뒤 산으로 올라간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바지를 벗고 사타구니를 태양 쪽으로 향해 벌렁 눕는다. 상상 만해도 무척이나 민망스러운 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여건으로는 선비들만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건강법으로 땀에 찌들었던 곳의 시원함은 물론 찝찝함과 가려움을 한 방에 날려 버렸던 것이다.


거풍이 조선 후기에 사대부들의 머리카락과 하체를 말리는 개인적인 풍습으로 전환된 것은 자연과 일체가 되고 싶은 생각에서였을 터이다.


요즘같이 햇볕 좋은 날에 사람 없는 깊은 산속에 가서 해 볼 만한 일이기는 하나 현대인이 도시생활을 하면서 자주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푸른 숲에서 나무가 뿜어내는 생기와 정기를 받아 마시는 생기 목욕법으로  원시 자연상태의 맨몸과 자연의 대기와 일체가 되어보는 자연의학적 관점의 산림욕이나 풍욕, 일광욕을 자주 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는 집안에서 풍욕을 즐길 수 있는 쉽고 편리한 방법도 나와 있다. 네이버를 검색하거나 유튜브에 보면 집에서 할 수 있는 풍욕 따라하기 영상이 많이 있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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