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허실실] 대도무문,어떤 길인가?
대도무문(大道無門),
길 없는 길 위에서 길을 묻다
크게 보면 문이 따로 없다는 이 짧은 네 글자는, 오히려 오늘의 시대를 향해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무문관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으로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歩
大道無門 ㅡ큰 도에는 문이 없다
千差有路 ㅡ그러나 수많은 길은 있다
透得此關 ㅡ이 관문을 꿰뚫으면
乾坤獨歩 ㅡ천지 사이를 홀로 거닐게 된다
“대도무문”은 정해진 틀이나 정답, 입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즉,
문이 없으니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디로든 들어갈 수 있는 자유의 경지를 말한다.
우리는 길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진로도, 투자도, 인간관계도, 심지어 행복해지는 방법까지 ‘정답’처럼 제시되는 수많은 길들이 있다.
누군가는 빠른 길을 찾고, 누군가는 남들이 이미 검증한 길을 따르려 한다. 그러나 그 길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자주 길을 잃는다.
대도무문은 말한다.
“본래 길이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말은 방황을 부추기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길에 집착하는 우리의 불안을 내려놓으라는 권유에 가깝다. 길이 없다는 것은 곧, 어디든 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답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안전한 투자, 모범적인 삶. 사회가 그려준 경로를 벗어나면 불안과 실패라는 낙인이 따라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틀리지 않을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대도무문은 그 틀을 깨뜨린다.
길이 없다면, 틀릴 길도 없다.
이 사유는 특히 변화가 빠른 오늘의 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직업의 수명은 짧아지며, 어제의 정답은 오늘의 오답이 되기 일쑤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해진 길을 잘 따르는 능력’이 아니라, 길이 없어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다.
길 없는 곳을 걷는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그 불안은 동시에 창조의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자리가 곧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대도무문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길을 걷고 있는가?”
남이 만든 길 위에서는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방향을 잃기 쉽다. 반면 스스로 만든 길은 더디고 거칠지라도, 그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속도보다 방향을 묻기 시작한다.
오늘 우리가 되새겨야 할 대도무문은 단순한 선문의 경구가 아니다.
그것은 경쟁과 불안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건네는 한 문장이다.
“길은 없다.
그러니, 당신이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부담이 될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길만을 좇는 삶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길 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