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기자들

6·25 당시 AP통신의 맥스 데스포 기자는 한장의 사진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전세계에 고발했다.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이라는 제목 자체가 그것을 말해 준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1950년 12월, 끊어진 철교 난간에 개미떼처럼 붙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북한 주민들의 처절한 모습을 생생히 전한 것이었다. “전쟁터는 위험하긴 하지만 기자는 뉴스가 있는 곳에 달려간다”는 것이 그의 간단한 소감이었다. 이 보도사진에 영예의 퓰리처상이 주어진 것은 이듬해의 일이었다.
한국전때 데스포 기자와 함께 전선을 취재하다 숨져간 국내외 종군기자가 무려 18명에 이른다는 점에서도 전쟁 취재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대부분 위험한 상황을 견뎌내며 전선을 쫓아다녔다. 국내 기자들도 40여명에 이르고 있었다. ‘종군기자 1호’로 불리는 이혜복(李蕙馥) 당시 경향신문 기자를 비롯한 이들은 밀고 밀리는 전선을 따라다니며 화약냄새 묻은 원고를 전송했다. 군인들이 총칼로 무장하고 적과 직접 부딪친데 비해 이들은 단지 펜 한자루만을 움켜쥐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실상을 전했다.
국내 기자로서 전쟁터를 취재하던 중 목숨을 잃은 기자로는 최병우(崔秉宇) 한국일보 기자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1949년 중공과 대만의 금문도 분쟁을 취재하러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요즘은 우리 언론의 취재영역이 넓혀지면서 언론사들이 세계 분쟁지역에 더욱 많은 기자들을 파견하고 있다. 걸프전과 유고사태를 비롯해 동티모르 등에서도 우리 기자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는 아프간 전선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크라 전선을 깊숙이 드나들며 취재하던 프랑스 및 독일 기자 4명이 갑작스런 포격에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의 고귀한 기자정신은 길이 기억될 것이다. 통일로 주변에 세워진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의 ‘먹물은 스러져도 기자의 얼은 푸르다’는 한구절이 떠오른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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