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상식보다 오래되고, 삶은 우리의 판단보다 깊다. 「최용대 작가의 호박과 도토리」 우화는 작은 도토리 하나를 통해 세계를 재단하는 인간의 습관을 돌아보게 하며, 경험이 어떻게 인식을 바꾸는지를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이미지 제공 = ai
햇살이 뜨거운 어느 여름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농부 최씨가 잠시 일손을 놓고 커다란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누웠다.
그는 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가느다란 호박 덩굴을 보았다. 그런데 저 가냘픈 줄기에서 자기 머리통보다도 큰 호박이 덜렁 매달려 있었고. 반면, 자기가 누워있는 이 거대한 상수리나무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도토리들이 올망졸망 달려 있었다.
최 씨는 혀를 차며 혼잣말로 "에구, 신께서 실수를 하셨구먼. 저렇게 가느다란 줄기에는 작은 도토리를 달아주고, 이렇게 굵고 튼튼한 나무에는 큼직한 호박을 달아주셔야 앞뒤가 맞지 않나!"
최 씨는 신의 설계가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톡!' 하고 딱딱한 무언가가 최 씨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다.
"아야!"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최 씨가 이마를 문지르며 바닥을 보니, 방금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도토리 하나가 굴러가고 있었다. 최 씨는 한참 동안 그 도토리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상수리나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신께서 다 생각이 있으셨구먼! 만약 내 생각대로 이 큰 나무에 호박이 달렸더라면, 지금 내 이마는 어찌 되었겠어? 도토리인 게 정말 천만다행이야!"
그날 이후 농부는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 그렇게 태어난 이유와 자리가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자연의 섭리에 불만을 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_최용대 호박과 도토리 우화 전문
이야기의 출발은 질문이다. "에구, 신께서 실수를 하셨구먼...앞뒤가 맞지 않나!" 이 질문들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 위한 가정법을 제시한 질문으로. 의문형을 빌려 독자의 동의를 먼저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어지는 장치는 대조로 연약한 줄기와 큰 열매, 굵은 나무와 작은 열매. 인간의 상식적 기대와 어긋나는 배치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판단하는 인간의 기준이 얼마나 단순한지 드러낸다. 여기서 대조는 설명을 대신한다. 논증 보다는 배치로 의미를 만든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알레고리가 놓여 있다. 호박과 도토리는 각각 과도한 결과와 절제된 결과를 상징한다. 연약함과 강함, 크기와 무게는 곧 인간이 세상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들이다. 여기서 '농부'는 세계를 해석하는 인간의 자리다. 이마에 떨어진 도토리는 경험을 통해 도달하는 인식의 한계를 상징한다.우리는 즉각 판단한다. 강한 것에는 큰 보상이, 약한 것에는 작은 결과가 따라야 한다고. 이 판단은 논리적이라기보다 습관적이다. 세계를 크기와 힘, 효율과 비례의 도식으로 이해하려는 인식의 관성이다.
문제는 이 판단이 관찰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식은 사물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작동하는지, 어떤 결과를 낳는지까지 포함할 때 비로소 경험이 된다. 우화 속 농부는 보았지만 아직 알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인간은 논증에 의해 생각을 바꾸기보다, 종종 위험의 가능성이 감각으로 전달될 때 인식을 수정한다.
이 우화의 수사학은 교훈을 직접 말하지 않는데 주목해야 한다. 질문 → 대조 → 사건 → 가정이라는 단계적 배열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여기서 문법은 사유를 이동시키는 기술이 된다.
호박과 도토리는 크기의 문제라기 보다 인간이 세계를 재단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짧은 이야기의 힘은, 답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유를 남긴다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호박과 도토리는 자연의 산물이지만, 인간 인식의 오만을 비추는 수사적 질문과 대조, 알레고리식 사고의 방향을 바꾼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 우화는 이성 중심적 판단에 대한 경험의 반론이다. 보기에 불합리해 보이는 배치가 실제로는 더 안전하고 지속적인 구조일 수 있다. 인식의 오류는 세계가 잘못된 데서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를 단순한 도식으로 환원하려는 인간의 태도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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