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박사

한국 현대정치사는 ‘박사의 정치사’였다. 이승만·김규식·장덕수·조병옥·장면 등 해방 이후 1960년대 초까지 한국정치를 지배했던 거물들이 모두 박사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순히 정계의 보스여서가 아니라, 일제시대 보통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외국박사’를 했다는 ‘특별신분’이 주는 카리스마로 인해 대단한 존재가 된 인물들이다. 대표적인 이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금도 ‘이대통령’ 못지 않게 ‘이박사’로도 불린다. 그를 독재자로 생각하는 이들은 ‘이대통령’ 쪽을 선호할 것이고, 건국을 이끈 초대 대통령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는 이들은 ‘이박사’ 쪽을 택할 것이다. 박사는 ‘존경’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박사학위가 없는데도 ‘신익희 박사’라고 불렸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요즘 박사가 그 시절 만큼은 못하지만 우리사회의 남다른 경외(敬畏)는 여전하다. ‘학벌 카스트 사회’가 된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회에서 왠지 기죽어 사는 느낌이 든다면 십중팔구 학벌 때문이다. 사실 박사는 명예와 존경뿐 아니라, 돈까지 가져다 준다. 개업한 의사, 세무사가 박사학위 수여증을 값비싼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걸어두면 영업도 잘된다. ‘박사 목사’라면 헌금액도 늘어날 것이다. 다행히도 관대한 우리사회는 박사가 못돼 설움을 받는 불쌍한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고 있다. 돈 주고 박사 학위증을 살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이들을 위한 논문대필 인터넷 사이트는 30여개나 된다. 몇백만원이면 대졸실업자나 대학재학생이 논문 한편 뚝딱 써준다. ‘눈가리고 아웅격’이지만 논문 내고 심사받는 절차를 거치는 이런 방식은 그래도 낫다. 최근 부패방지위원회가 발표한 신출귀몰한 ‘가짜 박사 이야기’는 정말 엽기적이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어느단체 임원이 미국 대학 박사학위를 받고, 1주일 동안 미국관광을 한 대학교수가 미 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는가 하면, 러시아 대학인데 논문이 한글이라고 한다. 진짜 박사실업자는 느는데 가짜 박사수요는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병에는 ‘이박사’보다 ‘이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직분에 충실한 사회’가 약이 될 것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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