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노웅래가 맞나, 한동훈이 맞나…중요한 것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25 07:51

1914년 美대법원, 영장 없는 압수 증거에 위헌 판결


2007년 한국에 도입…노태악 판사, 권성동에 무죄


노웅래 2심 무죄, "정치검찰 조작" vs "실체는 유죄"


의원 5명 중 1명꼴 법조인, "법학도 초심 되새겨야"


한동훈과 노웅래의 유무죄 공방 2라운드한동훈과 노웅래의 유무죄 공방 2라운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11년 12월 21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유니언 기차역. 경찰은 이곳에서 특송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프리몬트 윅스(Weeks)를 복권 불법 유통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곧장 그의 집으로 향해 영장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증거가 될 만한 물품을 가져갔다.


연방 검찰이 이를 재판 증거로 꺼내자 윅스는 "법을 어겨 가져간 물건으로 나를 벌줄 수 있느냐"고 맞섰다. 1914년 대법원은 윅스의 손을 들어줬다.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한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윅스 판결'이다.


▷ 한국은 달랐다. 과거 법원은 고문 등으로 받아낸 자백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문서와 녹음, 흉기 같은 물건에 대해선 증거능력을 폭넓게 인정해왔다. 이를 두고 기본권 침해 비판이 끊이지 않자 국회는 2007년 형사소송법을 고쳐 위법수집증거 배제 조항을 신설했다.


그해 11월 대법원은 '제주도지사실 압수수색 사건' 판결을 통해 종전 태도를 바꿨다. 검찰이 영장의 범위를 벗어나 압수한 물건은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에 윅스 원칙이 자리 잡은 순간이었다.


이 덕분에 국민의힘 권성동 전 의원도 2022년 강원랜드 채용비리(직권남용) 사건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주심 대법관이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었다.


'이렇게 좋을수가' '이렇게 좋을수가'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지인 등을 채용하도록 강원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 24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장제원 의원과 대화하며 미소 짓고 있다. 권 의원은 2022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9.6.24 pdj6635@yna.co.kr


▷ 윅스 원칙이 노웅래 전 민주당 의원의 뇌물 수수 사건 판결을 계기로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검찰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알선수재 사건을 수사하던 중 범죄 관련자가 노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넨 정황이 담긴 별건 범죄의 단서를 발견했다.


그중에는 2022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노웅래 체포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휴대전화에 그대로 녹음돼 있다"고 했던 파일도 있었다.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 항소심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등의 이유로 노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2심은 1심이 배제한 증거 가운데 일부의 증거능력을 인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112년 전 미국 대법원의 윅스 판결이 세운 원칙은 단순하다.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만큼 그 진실에 이르는 절차도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돈봉투의 '부스럭' 소리가 아무리 생생해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 역시 같은 이치다.


이에 노 전 의원과 민주당은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라며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하고, 한 의원과 국민의힘은 "위법수집증거 배제라는 절차적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을 뿐"이라며 실체적으로는 유죄라고 맞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2심 판결일 뿐이다.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법원 내려다 보는 정의의 여신상법원 내려다 보는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의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재 국회의원 다섯 명 중 한 명꼴이 법조인 출신으로, 최다 직업군이다. 이들 모두 법학도 시절 판·검사의 꿈을 꾸며 윅스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배웠을 텐데, 정치인이 되고 나니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요리조리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인다.


노웅래 2심 선고에 대해 다른 직종이라면 몰라도 법조인이라면 유무죄 주장 대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지켜보겠다고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진영에 따라 법리를 뒤집는 선배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후배 법학도들이 '법꾸라지'의 기본기부터 익힐까 겁난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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