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언(食言)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거짓말을 한다. 한 정신과의사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 8분에 1번꼴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모든 진실을 하나도 숨김없이 까발리면 세상은 그야말로 원시적 혼돈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란 말도 그 때문에 생겨났을 터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이기적 거짓말은 그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식언(食言)도 그중 하나다.
식언이란 말 그대로 자기가 한 말을 삼켜 버리는 것이다. 식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서경(書經) 탕서(湯書)에 등장한다. 은나라 탕임금은 하나라 걸왕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면서 “그대들에게 큰 상을 주리라. 나는 말을 먹지 않는다(我不食言)”라고 했다.
식언의 역사는 그만큼 오래됐다. 숱한 민중들이 식언 한마디에 좌절하고 고통을 당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이틀도 안돼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뒤 후퇴했다. 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민정이양을 공약했으나 식언으로 판명됐다. 또 71년 대선 때도 “마지막 기회”라고 공언했으나 당선후 유신을 선포, 종신집권체제를 갖췄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90년 “정계개편은 안하겠다”고 해놓고 침이 마르기도 전에 3당합당을 했다. 92년 대선 패배후 “평범한 시민이 되겠다”며 은퇴한 김대중 전 대통령, “쌀 한톨이라도 개방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언도 결국 식언이 돼버렸다.
정치인·기업인·지식인 등 지도층의 식언이 초래하는 사회의 도덕적 해이,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알게 모르게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법원이 한 기업인에게 영입을 약속했다가 취소해 피해를 입힌 모그룹 회장에게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차제에 식언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감시는 물론 식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의 길도 확대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