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간 큰 남편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8-23 23:32


간 큰 남편





남존여비(男尊女卑)·여필종부(女必從夫)의 이데올로기가 정착된 시기는 조선 후기라고 한다. 16세기 이전만 해도 여성의 지위가 그리 낮지는 않았다는 게 풍속사가들의 주장이다. 실제 기록에도 ‘간 큰 남자’ 시리즈와 유사한 일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고려 충렬왕 때는 고위 벼슬에 있던 박유(朴楡)가 축첩 제도를 도입하자는 상소를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당시 다처제 나라인 몽골의 공녀(貢女) 요구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제안한 것이나 고려 여성들이 시위까지 벌이며 박유를 규탄, 큰 파문이 일었다. 결국 이 상소는 재상들 중에 공처가가 있어 보류되었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박유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간 큰 남자였던 셈이다.



고려 때는 재산상속이나 제사 등에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다. 이는 아내 집에서 자식 낳고 웬만큼 살다가 남편집으로 가는 ‘남귀여가’의 결혼풍습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남녀의 차별이 덜했다는 의미이지 실질적으로 평등한 것은 아니었다. 여성은 벼슬길이 막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성을 ‘군계일학’으로 칭송하는가 하면, 아내를 관리 못한 공처가가 관직에서 쫓겨난 사례 등이 민담을 통해 전해진다. 여성의 지위에 대한 보편적 현실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여성의 위상 강화를 경계하는 사회적 함의를 풍자적으로 말해준다. ‘아침밥 달라는 남편’ ‘아내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는 남편’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남편’ 등 요즘 유행하는 ‘간 큰 남자’ 이야기도 그런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서울가정법원이 주택 등 재산의 처분과 분할 등에 있어 배우자의 권리를 신장시킨 부부관련법 개정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간 큰 남편’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신세 한탄도 이제는 청승맞게 들린다. 부부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공존, 상생의 게임이다. 부부가 서로 성적(性的)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권한에 걸맞게 책임을 다한다면 법과 제도의 변화가 두려울 것도 없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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