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배재경 시인, 시집 『경배합니다』 출간…“세상 모든 존재에 예의를 갖추는 마음”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27 13:35

지난 10년의 시적 기록 담아…생모와의 58년 만의 해후 등 삶의 고백 풀어내

“유명인보다 실력 있는 숨은 진주를 만나는 기쁨이 더 크다”

배재경 시인이 네 번째 시집『경배합니다』(사진=사이펀 제공)

“우리는 자연의 미물일 뿐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자연의 일부라면, 먼저 삶을 살아온 분들과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배재경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경배합니다』를 펴냈다. 『절망은 빵처럼 부풀고』, 『그는 그 방에서 천년을 살았다』, 『하늘에서 울다』에 이은 이번 시집은 지난 10년간 시인이 지나온 삶과 사람, 자연에 대한 기억을 한데 모은 시적 기록이다.


196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배 시인은 대구에서 문청 시절을 보낸 뒤 부산에 정착해 줄곧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1994년 《문학지평》과 2003년 《시인》을 통해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보다 앞선 1992년부터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지역 문학운동에 참여했다.


지역신문과 주간신문 기자를 거쳐 출판계에 몸담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게릴라》, 《지평의문학》, 《가마문화》, 《문학풍류》 등 여러 문예지 제작에 참여했으며 현재 계간 시전문지 《사이펀》을 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펀》 창간 10주년을 맞는 등 창작자이자 출판인으로 지역 문학의 한 축을 지켜왔다.


특정 종교 아닌 ‘만물에 대한 경배’


시집 제목 『경배합니다』에서 말하는 ‘경배’는 특정 종교의 숭배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먼저 살아온 사람들과 세상의 모든 존재를 대하는 시인의 태도에 가깝다.


배 시인은 “지구가 마치 인간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인간 역시 잠시 머물다 가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며 “문학적으로나 사업적으로, 혹은 성격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문화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대중음악의 성취 뒤에도 오래전부터 민족의 노래와 트로트를 불러온 사람들, 이미자·조용필·심수봉·이문세·서태지 등 앞선 세대의 음악적 축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BTS 역시 그러한 문화적 유산 위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시집에 수록된 표제작 「경배합니다」는 이런 시인의 세계관을 압축한다. 특히 시 속에 등장하는 ‘허리가 반 접힌 촌로의 뒷모습’은 배 시인에게 오래 지워지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한 인간이 견뎌온 세월과 노동, 그 삶 자체에 고개를 숙이는 마음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한 번 폐기한 시집, 다시 엮은 10년의 기록


이번 시집에는 특별한 사연도 있다. 애초 2023년 무렵 출간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사람의 책과 문예지를 만드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자신의 시집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급하게 엮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만들어진 책을 한 권도 남기지 않고 전량 폐기했다.


이후 작품을 다시 추리고 다듬으면서 제목까지 『경배합니다』로 바꿔 새롭게 세상에 내놓았다.


배 시인은 이번 책을 “지난 10년의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2년 전 펴낸 『하늘에서 울다』가 사회 현실에 대한 고발의식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한 시집이었다면, 『경배합니다』는 보다 개인적인 삶과 기억, 서정의 층위에 놓인 작품들을 모았다.


「경배합니다」를 비롯해 「어떤 부고」, 「백일홍 편지」, 「어떤 해후」 등 자신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 고백시가 적지 않다. 때문에 배 시인은 독자들에게 “시인의 고백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58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시로 쓰다


시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작품으로 배 시인은 「엄마가 오셨다」를 꼽는다. 58년 만에 만난 생모와의 해후를 담은 작품이다.


처음 형이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고 했을 때 그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을 따라나섰고, 그렇게 58년 만에 생모와 마주했다. 그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세 명의 동생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시인은 이를 “갑자기 내게 동생 셋을 안겨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하며 어머니를 ‘기적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렵게 다시 만난 어머니는 불과 두 해 뒤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때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보내드렸다면 평생 가슴에 깊은 멍이 남았을 겁니다. 그래도 가시기 전에 뵐 수 있었고, 동생이 셋이나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엄마가 오셨다」는 58년이라는 긴 부재를 거창한 비극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엄마가 오셨다/58년이 지나 엄마가 오셨다”는 담담한 진술에서 시작해 뒤늦게 얻은 가족을 기뻐하다가 “이제는 또 가지 마!”라는 절박한 마음에 이른다. 긴 세월의 결핍과 짧았던 재회가 한 편의 시 안에서 겹쳐진다.


“수사보다 자기 세계가 있는 시”


배 시인이 생각하는 좋은 시의 중심에는 ‘보편적 서정성’이 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해체시와 도시시 등이 전통 서정시와 이념시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낯설게 하기’가 지나친 수사로 흐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특히 유행하는 시적 경향을 좇기보다 시인 스스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려한 수사보다 한 사람의 생이 배어 있는 시, 다소 밋밋해 보이더라도 삶의 연륜과 체온이 느껴지는 시를 만날 때 오히려 반갑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창작관은 『경배합니다』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화려한 언어로 삶을 장식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사람과 사건, 오래 묻어둔 기억을 불러내 시의 자리로 옮긴다.


“《사이펀》 내려놓고 내 글 쓰고 싶다”


시인이면서 오랫동안 다른 시인들의 책을 만들어온 배재경 시인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언젠가는 자신이 발행하는 《사이펀》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온전히 자신의 글쓰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못 쓴 시와 산문도 쓰고 시평도 쓰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여건이 쉬이 허락하지 않네요.”


사무실을 도심에서 멀지 않은 숲속으로 옮기는 것도 그가 그리고 있는 미래 중 하나다. 다음 시집에는 『경배합니다』보다 더 단단하게 영근 작품을 담고 싶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이펀》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국 곳곳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시인들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배 시인은 “유명한 사람보다 실력 있는 숨은 진주를 만나는 기쁨이 더 크다”며 “전국에 숨어 있는 좋은 시인들을 최대한 많이 밖으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경배합니다』는 결국 한 시인이 지난 10년 동안 만났다가 떠나보낸 사람들, 뒤늦게 되찾은 가족, 이름 없이 살아가는 이웃과 자연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시집이다. 사람도 자연도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가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출발한 그의 시는 ‘경배’라는 조금은 무거운 말을 결국 ‘예의’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되돌려놓는다.

배재경 시인(사진=사이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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