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더러 한가위가 되라니

옆 동네가 재개발로 휑해졌다. 허허벌판 귀퉁이, 아직 헐지만 않았지 체온이 진작 식어버린 골목이 몇 남았다. 썰렁한 그곳을 벗어나면 바로 딴 세상. 명절 정치 하느라 내건 현수막이 거리마다 펄럭인다. ‘보름달처럼 환한 한가위 되세요’ ‘마음 풍성한 한가위 되십시오’…. 흔해 빠진 ‘추석’보다 ‘한가위’를 주로 써서 멋스럽기도 한데. ‘되세요’ 때문에 씁쓸하다.
사람보고 한가위가 되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편안한 여행 되세요’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처럼 말이 안 된다. 그럼 어찌해야 옳을까.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편안한 여행 다녀오세요’ ‘즐거운 관람 하세요’ 해야 최소한 어법에 맞겠지.
제대로 하자면 ‘여행 편안히 다녀오세요’ ‘즐겁게 관람하세요’처럼 말하고 쓸 때 대체로 더 자연스럽다. ‘관형어+목적어+서술어’(맛있는 식사 하세요)가 아니라 ‘목적어+부사어+서술어’(식사 맛있게 하세요)나 그냥 ‘부사어+서술어’(맛있게 식사하세요) 형식이 우리말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풍성한 한가위’는 사람이 아니라 ‘명절 연휴’와 동격이라고 억지 쓸 수도 있겠다. ‘여러분, 이번 명절 연휴가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를 줄인 말 아니겠느냐면서. 턱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연휴’를 존대한 꼴이라 역시 어불성설이니까. 주체를 높이는 선어말어미(先語末語尾) ‘시’는 사람이 아니면 쓰지 않는 게 우리말의 법이다. ‘(식사비가) 3만원 나오셨습니다’ ‘말씀하신 제품은 품절이세요’ ‘(옷이) 그 치수는 없으세요’ 하면 안 되듯이(‘마음씨가 고우신 선생님’처럼 사람의 특성이나 소유물 따위에는 ‘시’를 붙일 수 있다).
어법에 끼워 맞춘다면 ‘(이번 연휴가) 풍성한 한가위 되기 바랍니다’ 정도인데, 여전히 어색하다. 결국 ‘한가위 풍성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무난하겠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같은 글귀가 그나마 다행스러운데 ‘추석만은 웃음 가득 보내세요’가 눈길을 붙든다. 이런 식으로 쓰면 좋을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