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 정광영
자주 빠뜨리기도 하고
어디 있는 줄 몰랐더니
세상에 시달리고
시류(時流)에 씻기고 씻겨
비로소
깊게 패인 동굴
얼이 박힌 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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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가위라 반가운 얼굴들이 고향집을 찾을 것이다. 얼굴에 새겨진 언어, 메세지가 각자 다를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얼굴’이라는 익숙한 대상을 삶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발상입니다.
첫 수의
“자주 빠뜨리기도 하고 / 어디 주름은 세월이 새긴 얼의 지도 줄 몰랐더니”
에서는 ‘얼굴’을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바쁜 세상살이 속에서 자신도 잊고 살아가는 자아로 읽게 합니다. 얼굴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둘째 수에 이르면 시선이 개인에서 세상으로 넓어집니다.
“세상에 시달리고 / 시류에 씻기고 씻겨”
‘시달리고’와 ‘씻기고’라는 동사를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겪은 고난과 풍파를 압축합니다. 특히 ‘시류(時流)’라는 한자어를 넣음으로써 개인의 삶이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수가 이 작품의 백미입니다.
“비로소 깊게 패인 동굴
얼이 박힌 굴이다”
세월과 풍파가 얼굴에 주름을 만들지만, 시인은 그것을 단순히 늙음의 흔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깊게 패인 주름을 ‘동굴’에 비유하고, 그 안에 ‘얼’이 박혀 있다고 합니다.
즉 젊은 시절의 매끈한 얼굴보다, 삶의 고난을 견디며 깊게 패인 얼굴에서 오히려 한 인간의 정신과 영혼, 삶의 내력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특히 ‘얼굴 → 얼이 박힌 굴’이라는 언어적 해석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얼굴의 ‘굴’을 공간으로 확장하고, 그 깊은 곳에 ‘얼’이 자리 잡았다고 봄으로써 얼굴을 곧 사람의 정신이 새겨진 삶의 동굴로 승화시켰습니다.
한마디로 평한다면
“주름진 얼굴은 늙음의 흔적이 아니라, 세상을 견뎌낸 얼의 흔적이다.”
이것이 이 작품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큰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조이지만 ‘얼굴 → 세상 → 시류 → 주름 → 동굴 → 얼’로 의미가 점층적으로 깊어집니다.
특히 마지막의 ‘얼이 박힌 굴’은 제목 ‘얼굴’을 다시 해체하여 새로운 의미로 되돌려 놓는 결구라서, 작품의 압축미가 돋보입니다.
다만 시조의 전통적인 율격보다는 현대시조의 자유로운 호흡과 언어적 발상에 무게를 둔 작품입니다. 그래서 정형률의 엄격함보다는 주제와 발상의 신선함을 중심으로 '주름은 세월이 새긴 얼의 지도' 라 생각하고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