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지정 앞둔 '왕실의 사찰' 전등사…현존 最古 사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9-21 07:37

1천600여년 전 창건 이후 고려시절 성장…조선왕조실록 보관도


오는 30일 국가유산위 심의…강화군 '첫 명승'될듯


인천 강화군 전등사 전경인천 강화군 전등사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현존하는 국내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인천 강화군 전등사가 '국가유산 명승' 지정을 앞두고 재조명받고 있다.


21일 강화군과 전등사 등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강화 정족산 전등사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지난달 10일부터 한 달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으며, 이 기간 이의 제기는 없었다.


이에 따라 전등사는 오는 30일 국가유산위원회에서 명승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유산 중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존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명승으로 지정된다.


강화군에는 보물 13점을 비롯해 국가 지정문화유산 37점이 있지만, 명승으로 지정된 곳은 없다.


전등사는 국내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372년에서 9년이 지난 381년 창건됐다.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로, 창건 당시 명칭은 전등사가 아닌 '진종사'였다. 진나라 승려가 강화도에 머물며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전등사는 900년이 훌쩍 지나 고려시대 왕실과 특별한 인연을 맺으며 크게 성장했다.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종이 1259년 정족산성(삼랑성) 안에 임시궁궐(가궐)을 짓도록 했는데, 그 이후 진종사도 크게 확장됐다.


이후 충렬왕 시절인 1282년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은 불교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으로, 중국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가져와 보관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라고 전등사 측은 설명했다.


전등사는 조선 왕조에서도 입지를 탄탄히 했다.


광해군 때인 1614년 큰 화재가 발생해 전등사는 소실됐으나 머지않아 재건됐고, 이때 전등사의 대표 건물이자 보물(178호)인 대웅전도 다시 지어졌다.


강화군 전등사강화군 전등사 [전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면서 '왕실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전등사는 나라를 지킨 사찰로도 유명하다.


병인양요가 있었던 1866년 승려들은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에 맞서 조선군과 함께 정족산성에서 항전을 치렀다.


전등사 대웅전 기둥과 벽에는 당시 병사들이 나라를 지켜달라는 뜻으로 이름을 적은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현재 전등사에는 대웅전과 약사전, 범종 등 보물 6점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유산이 보존돼 있다.


사찰 주변의 정족산과 산성 역시 역사 유적과 함께 뛰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다는 게 전등사 측의 설명이다.


강화군은 전등사가 국가유산 명승으로 지정되면 이러한 역사와 자연의 가치를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강화군 관계자는 "강화에는 다른 국가 유산이 여럿 있지만 명승이 지정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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