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춤은 사라진 시간을 다시 걷게 한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9-25 14:29




지난 9월 22일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고운홀에서 「2026년 신예담의 춤 무담 열한 번째 이야기」를 보았다. 승무, 대구살풀이춤, 정읍검무, 선살풀이춤, 산조춤, 입춤, 교방수건춤, 소고춤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끝난 뒤 오래 남은 것은 춤의 순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의 질문이었다.


왜 지금 전통춤인가.


무대의 막이 오르자 국가무형유산 이매방류 승무가 시작됐다. 신예담, 장윤정, 구나경의 흰 장삼이 어둠을 가르며 천천히 원을 그렸다. 팔이 올라가면 소매가 허공을 밀어내고, 내려오면 긴 여운이 무대에 가라앉았다. 발디딤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 걸음마다 무대의 바닥을 누르는 힘이 있었다. 움직임 속에 고요가 있었고, 고요 속에 다시 움직임이 태어났다.


장준용 선생의 북가락이 울렸다. 북소리는 귀로만 들리지 않았다. 가슴을 두드리고 발끝을 깨우며 장삼의 움직임을 밀어 올렸다. 흰 소매가 크게 휘돌다 멈추는 순간 객석도 숨을 죽였다. 춤이 소리를 만들고 소리가 다시 춤을 움직였다. ‘들리는 춤’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대구살풀이춤에서는 흰 수건이 길게 풀렸다. 수건은 몸을 따라 흐르다가 다시 허공으로 솟았다. 슬픔을 끌어안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밖으로 밀어냈다. 살풀이는 한을 재현하는 춤에 머물지 않았다. 견디고 풀어내며 다시 살아가는 인간의 몸을 보여주었다.


정읍검무는 팽팽했다. 네 무용수의 칼끝이 허공을 가르며 무대에 선을 그었다. 칼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니었다. 몸의 방향을 넓히는 또 하나의 선이었다. 호탕한 기세와 부드러운 몸짓이 맞물리면서 힘과 아름다움이 한 장면 안에 들어왔다.


선살풀이춤에서는 부채에 매달린 긴 명주가 크게 휘돌았다. 부채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명주는 몸에 감겼다가 풀려났다. 맺힌 것을 풀고 흩어진 것을 다시 모으는 움직임이었다. 작은 부채 하나가 무대 전체를 움직이는 바람이 되었다.


산조춤은 장단이 몸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진양조의 느린 호흡에서 중모리와 중중모리를 지나 자진모리, 휘모리로 속도가 올라갔다. 빠른 장단에서도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속도를 견디는 것은 기술이지만, 속도 속에서 절제를 지키는 것은 수련의 깊이다.


고선아류 입춤에서는 소품이 사라졌다. 몸이 곧 무대였다. 손끝 하나, 어깨의 작은 움직임, 발끝의 방향이 장단을 만들었다. 화려한 장치가 걷히자 오히려 사람의 몸이 가진 오래된 언어가 또렷해졌다.


교방수건춤의 수건은 기다림처럼 내려왔다 다시 올라갔다. 떠난 이를 향한 마음과 놓지 못하는 그리움이 수건의 궤적에 겹쳤다. 소고춤에서는 작은 북 하나가 무대를 마당으로 바꾸었다. 수제비뜨기와 모심기, 물레방아와 타작놀이의 동작이 장단을 타자 한 사람의 몸에서 농촌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이 장면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옛 춤의 재현이 아니었다.


전통은 과거의 물건이 아니다. 몸에 남아 있는 시간이다. 손끝과 발끝, 호흡과 장단에 새겨져 다음 세대로 건너가는 기억이다. 문서로 보존하는 것과 몸으로 이어가는 것은 다르다. 몸은 기억하면서 동시에 변주한다. 그래서 전통은 살아 있는 동안 늘 현재형이다.



대구 살풀이. 승무 춤. 선살풀이춤. 정읍검무. 산조춤. 고선아류 입춤  (사진 제공 = 배성근)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기면 수많은 장면이 지나간다. 어제의 것은 오늘의 새로움에 밀려난다. 기억마저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전통춤은 느리다.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기 위해 수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팔 하나를 들어 올리는 데도 호흡이 필요하다. 장단 하나를 몸에 새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느림은 낡음이 아니다. 오히려 속도에 밀려난 인간의 감각을 되찾는 시간이다. 그래서 지금 전통춤을 바라볼 이유가 있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현재의 삶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무엇을 이어받았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묻는 일이다. 전통이 오늘의 사람에게 닿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존은 될지언정 생명력을 잃는다. 반대로 오래된 몸짓이 오늘의 몸을 통해 새롭게 해석될 때 전통은 다시 살아난다.


신예담의 무대가 남긴 질문도 결국 여기에 닿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인가. 춤은 말보다 먼저 몸으로 기억한다. 한 사람의 발끝에는 스승의 시간이 남고, 한 장삼의 움직임에는 앞선 세대의 숨결이 남는다. 그렇게 몸에서 몸으로 건너온 기억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는 달라져도 그 안에 담긴 인간의 희로애락은 다시 현재의 언어가 된다.

전통춤은 과거를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시간의 깊이를 다시 묻는 자리다. 춤은 사라진 시간을 오늘의 몸으로 다시 걷게 한다.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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