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한 편 산문 한 편 ❻

박상봉 기자

등록 2025-08-25 08:04

| 시 | 모감주나무


박상봉

 

그가 사랑한 여자는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

모감주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을 잃은 사내는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산은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나무는 숲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사랑은 다 그런 것일까

오래 가야 일 년 삼 개월

눅눅한 땀만 손에 쥐어놓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산을 헤매며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비 오는 날 사내는 산을 오른다

깊은 골짝 바위틈에서 나는 물 냄새

쑥댓잎 흔드는 바람소리 휘젓고 다니다가

비겁한 지식에 기대어 삶을 망쳤다고

여자마저 놓쳐버렸다고 투덜대며

젖은 발걸음 돌려세우는데

절집 마당가에 웅크린 모감주나무

긴 회초리가 뒷등을 후려친다

—박상봉 시집 『카페 물땡땡』 63쪽


| 산문 | 모감주나무 


시를 쓰다 보면 술술 잘 풀릴 때가 있고, 어떤 날은 머리고 가슴이고 꽉 막혀 단 한줄의 시도 쓰여지지 않는 때가 있다.


나는 기복이 좀 심한 편이다. 어떤 해에는 한 편도 쓰지못하고 일년이 다 지나간 적도 있고 요즘 같아서는 하루에 서너 편씩 쏟아져나올 정도로 가로늦게 시작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돌이켜보면 시를 가장 왕성하게 썼고 청탁도 이어지고 발표도 많이 했던 시기는 30대 초반부다. 그 때는 거의 하루종일 죽자고 시만 썼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콸콸 쏟아져나오던 시의 수도꼭지가 꽉 막혀버렸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


문학사상의 청탁을 받아놓고 시를 쓰려는데...이렇게 딱 두줄도 끝맺지 못하고 더 이상 시가 써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서 주말마다 온 산을 헤매고 다닐 때였다. 아마도 한강 이남 쪽에는 안가본 산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산으로 절로 돌아다녔다. 


그 여자 나이는 나와 열한 살이나 차이가 났다. 나를 ‘아저씨’ 라고 부르며 따랐는데 나이 어린 여자를 사귀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항상 갈등에 휩싸였다.


 그 여자는 “아저씨 저랑 결혼해요”하며 졸라댔다. 그 당시 나는 돈벌이도 변변치 않았고, 아이도 하나 딸려있는 홀아비 신세였기에,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내를 좋아라 해주는 그 여자가 눈물겹도록 고마웠지만 늘 뭔가 죄 짓는 기분으로 만났다. 


어느 날 “나랑 결혼해서 후회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여자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드디어 나는 그 여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어린 여자를 데려와서 행복하게 해주려면 약간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기에 “일년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앞으로 일년 동안 깊이 생각해보고 그동안 다른 남자도 사귀어보고 잠도 자봐라, 그래도 일년 뒤에 내가 좋다면 그때 결혼하자” 이렇게 말하고 “일년간 만나지 말자”고 약속했다. 


나는 일년 안에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고 집도 마련해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날로부터 일주일도 남지 않은 눈 많이 쌓인 어느 날, 편지 한장 딸랑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수소문 끝에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게 되었다. 나는 주말마다 산과 절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여자와 함께 다녀본 절이란 절은 다 가봤다. 그러는 사이에 시를 완성하지 못해 문학사상에 원고를 보내지 못했다. 


미리 써둔 다른 시도 여럿 있었지만 꼭 그 여자를 소재로 쓰던 시를 완성해 보내고 싶었다. 그 시가 완성되지 않으면 더이상 아무 것도 쓸 수 없을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을 쓰더라도 다 소용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문학사상 편집자는 의외로 “다음달 마감일까지 시를 써 보내달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또 한달 간 산을 헤매고 다녔는데 그 여자도 못찾고 시도 못썼다. 


한달이 지나고 어김없이 문학사상 편집자는 또 전화를 해왔다. “시를 아직도 못썼다”고 말하니 “그럼 다음 달에는 꼭 보내달라”고 정중히 말하고 끊는 것이었다.


그렇게 온산을 뒤지고 다닌 끝에 가지산 석남사에서 드디어 그 여자를 만났다. 주말마다 여러 절을 찾아 헤매던 중에 어느 날이었다. 석남사를 또 들렀다가 내려온 날 밤 꿈에 그 여자가 나타나서 “나, 여기 있는데 왜 못찾아요...”하면서 모감주나무 가지로 두들겨 깨우는 것이었다. 


그 길로 회사도 안가고 석남사로 바로 달려가 종무스님을 만나 끈질긴 말씨름 끝에 마침내 그 여자를 만나게 됐다. 하지만 데리고 내려오지는 못했다. 그 며칠 전에도 석남사를 찾아갔을 때 분명히 여기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 여자 내어놓으라고 생떼 부리다가, 덩치 큰 여승들한테 바짝들려 문밖으로 패대기쳐진 적이 있었다. 


밤은 깊어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한데 절문 닫히는 소리가 대포 소리 같았다. 그 순간, 귀가 찢어지고 머리가 먹먹해지면서 가슴이 갈갈이 아프게 찢어지는 그 순간, 나는 가지산 꼭대기에 올라가 석남사 쪽으로 날개를 활짝 펴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화가 난 것은 여러번 석남사에 찾아갔었는데 그 때마다 “그런 여자 온적 없다”고 딱잡아 떼다가 ‘생떼’ 좀 부리고 나중에 거짓말 한 것 들통나서 마지못해 만나 게는 해줬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가지산이 떠나도록 통곡했다.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렀고, 천근이 넘는 슬픔을 가지산에 내려놓고 와서 그런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 두줄도 못 쓰고 글이 막혀 멀찍이 밀쳐두었던 청탁 시 초안은 아주 한참 뒤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서 ‘모감주나무’라는 시로 완성되었다.


문학사상에 청탁받은 지 무려 10년이나 지나서 사연과 함께 원고를 보냈는데 실리지는 않았다. 바뀐 편집자는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는 내 원고를 패댕가리쳐버렸겠지.


이 세상에 내 말을 믿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인수나 이하석이나 장엄송도 아니고 지방의 보잘 것 없는 시인에게 석달동안 줄기차게 시를 청탁해줄 문예지가 대한민국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겪은 일은 한바탕 꿈이었단 말인가. 또 누군가는 세상 이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꿈 꾸는 ‘유토피아는 이 땅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름만 대면 우리가 다 알만한 시인이 말이다. 그러면서 시는 왜 쓰나? 도대체 시를 무엇에 쓰려고 하고 있나?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속이 다 후련했다. ‘모감주나무’를 완성한 그날부터 시가 봇물 터진듯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감주나무’는 나중에 양문규 시인이 주관하는 천태산은행나무시제에 발표를 했다. 


보라, 얼마나 멋진 반전인가? 얼마나 시적인 결말인가? 첫 발표장이 그 여자가 도망가 숨은 산속 어디쯤이라니...

잃어버린 여자를 찾아 산을 헤매면서 쓴 시를 결국 산에다가 걸어놓고 첫 발표를 하다니...


나는 시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들어 시에는 반전이 있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시의 반전은 책상머리에 앉아 찾을 것이 아니라 산을 헤매면서 찾아야한다. 대학 강단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이나 공장에 가서 찾아야 한다. 


나는 이른바 귀족시인 패당에 속하지도 못하고 메이저급 문예지에서는 평생 청탁 한번 받지 못한 무명시인에 불과하다. 그래도 가끔 청탁 오는 곳이 있어 경중을 따지지 않고 가장 최근에 쓴 시를 우선적으로 보내거나 따끈한 신작시를 새로 써 보내기도 한다. 종종 페이스북이나 밴드에도 신작시를 발표한다.


주위에서는 나더러 시를 아무데나 발표하지말라고 한다. 값 떨어진다고... 또 4대 문예지에 발표해야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날 가봐야 청탁 한번 없는데도...? 청탁만 기다릴 게 아니라 투고를 하는 적극적인 방법도 권유한다. 하지만 구차해보여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을뿐 아니라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줍잖은 시인이 꼴갑 디기 떤다고 빈정될지도 모르겠으나 무릇 시인이란 삐끼가 되어서는 안되고 딴따라 하곤 달라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이 그렇다.


시가 뭔지? 왜 쓰는지? 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땅의 시인들에게 묻고 싶다. 


나, 비록 사랑하는 여자는 잃었지만, 10년동안 시의 길을 잃고 헤매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오직 한길. 흔들림없이 시의 곧은 길로 가고 싶다.


요즘 시인들에게 시정신이 사라졌다는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시인에게 시정신이 없다면 시를 써 무엇하리? 발표한들 무엇하리.

|박상봉 시인 약력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 『국시』 동인으로 문단활동 시작. 주요 시집 『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 『오늘의 시』 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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