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정치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상일 게다.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도 비슷한 욕망이 있을까. 과거 3김씨는 신년이면 고사성어로 ‘갈 바’를 비치곤 했다. 그 성어는 아날로그식으로 하면 신년 휘호나 화두일 거고, 디지털식으로는 키워드쯤 될 것이다.
고사성어 정치의 달인은, 지금은 잊혀진 노정객 JP(김종필)다. 영원한 2인자로서 고빗길마다 변화무쌍한 고사성어로 심경과 정치를 전했다. 가령, 김영삼(YS) 대통령 밑에서 불안한 2인자로 있던 1994년. JP는 ‘상선여수(上善如水·물과 같이 순리에 따라 산다)’를 신년휘호로 썼다. 퇴진의 벼랑에 처한 이듬해 내놓은 것은 ‘종용유상(從容有常·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산다)’. 기사회생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승부를 벼를 때는 ‘줄탁동기’(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를 내거는 식이다.
JP의 고사성어 정치에는 운치와 여백이 있었기에 시정에도 인기가 적잖았다. 하기야 근 반세기 전 외유를 떠나며 남긴 ‘자의반타의반’, ‘서울의 봄’을 비유한 ‘춘래불사춘’ 등으로 익히 정평난 JP의 수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조정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 등은 선명해 힘이 있었지만, JP의 그것에는 멋이 실렸다.
짧은 네 마디에 마음을, 다짐을 온전히 전하고 싶은 것이야 어디 그들뿐이랴만. 해도, 말 같지 않은 말로 숱한 설화를 내고 논란을 일으킨 요즘 정치인 그들이 새삼 절제의 미학을 배운 것도 아닐 터고. 어쩐지 대가인 척, 억지로 멋스러움을 내는 듯싶어 썩 울림이 울리지 않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일까.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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