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작고한 작가 최명희(1947~98)의 ‘혼불’에서 주인공인 청암부인이 일제하에서 몰락하는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다짐하면서 하는 소리다. 전북 남원의 한 시골마을을 무대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청암부인은 청상에 과부가 된 종가의 맏며느리, 즉 종부(宗婦)다. ‘내 뼈를 일으키리라’는 말 속에서 이 땅의 종부들이 가져야만 했던 혼이 그대로 느껴진다.
종손은 없어도 종부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역사에 있어서 종부의 비중은 컸다. 그만큼 종부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는 얘기다. 정도에서 차이가 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사를 유달리 중시하는 유교 전통 때문에 1년에 10여회는 보통이고 20여회 이상 제사를 모시는 종부도 많다. 집안의 음식맛을 지키고 풍습을 잇는 것, 집안을 화목하게 이끄는 것도 종부의 몫이다. 옛날에는 불씨를 지키는 것도 종부가 맡은 일이었다.
종부는 의무가 많았던 만큼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역사가 오랜 종가들은 한결같이 기(氣)가 모이는 장소에 종부가 거주하는 안채를 배치하고 있다. 가문의 기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기가 모이는 집안의 중심에다 안채를 지었던 것이다. 지금은 집안에 따라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위 항렬일지라도 종부에게는 하대를 하지 못하고 존칭을 사용해야 했다. 기제(忌祭) 때는 원래 종손이 첫 잔(초헌·初獻)을 올리면 종부가 둘째잔(아헌·亞獻)을 올렸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최근 종부의 역할이 크게 바뀌고 있다. 직장 생활하는 젊은 종부 때문에 나이 많은 시어머니가 혼자서 제수를 준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 집안에 따라서는 제사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 차례나 시제(時祭)때 상 차리는 횟수를 줄이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의 명문종가 종부 20여명이 지난 29~30일 전주에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1박2일 동안 털어놓은 이들의 말 뭉치 속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종부상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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