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갇힌 인문학
현대 우리 사회의 문화는 서구의 근대성이 만들어낸 체계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주의는 물론 보편적 인권과 자유, 평등에 기초한 계몽의 이념이 체계화된 정치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체계는 18세기 이래 서구의 근대가 강력한 군사력과 과학기술로 동아시아를 침탈하면서 이루어진 변화이다.
이로써 우리가 지닌 규범과 체계, 철학의 틀은 사라지고, 그곳에 근대의 원리와 체계, 이해의 틀이 대신 자리하게 되었다. 200여년이 넘지 않는 역사에서 근대와 근대화는 우리의 숙명이 되었다. 합리성, 과학기술, 자본주의 등의 명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규범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 땅의 인문학은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유효한지, 어떤 역사성에서 반성해야 하는지, 나아가 그 체계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 대답을 모색하는 작업에는 서투를 뿐이다. 몇몇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는 여전히 그런 문제에 눈감고 있다.
논란이 된 ‘뉴라이트 교과서’의 경우, 민주화 운동과 해방 이후 역사에 대한 몰이념은 많이 비판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정작 문제가 되는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이해의 척박함은 거론되지 않는다. 일제에 의한 근대화를 미화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근대가 혁명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존중과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구조에서의 해방, 이성의 원리와 합리성에 대한 존중 등은 그 어떤 시대에서도 이룩하지 못했던 인간의 진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다른 한편 제국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타자의 존재근거를 부정하는 층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근대화에 대한 담론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란 관점에서 논의되고 성찰되어야 한다.
근대와 관련하여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 특히 중국 지식계의 서구에 대한 반응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18세기 이래 동아시아 지식인이 지녔던 정신적 충격과 반응은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서구의 지식에 대한 이해와 학문적 깊이에서 우리는 중국학계보다 앞선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러운 것은 멀리는 5·4운동, 가깝게는 톈안먼 사건과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 이래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뇌하면서 근대를 넘어설 틀에 대해 성찰적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현재에서 세계와 역사를 해석할 근본적인 패러다임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 우리 인문학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얼마 전 인문학 위기를 선언한 학자들과 이에 화답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증액한 1천억원 상당의 인문학 지원금이 이런 문제에 도움이 될까?
아마도 이제껏 그랬듯이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는 잔치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뒤 인문학 위기가 논의될 것이다.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지도 미래를 고뇌하지도 않는 학자, 우리의 문제를 살펴볼 능력도 마음도 없는 이들이 벌이는 학적·경제적·사회적 잔치는 우리를 절망하게 만든다. 우리 인문학의 위기는 시나브로 깊어만 간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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