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과 북학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어수선하던 조선왕조는 병자호란(1636~1637)을 겪은 뒤 ‘북벌론’을 내세운다. 오랑캐이자, 호란의 치욕을 안겨준 청을 응징해야 한다며 ‘반청(反淸)’의 깃발을 올린 게 북벌론이다. 옛 땅 수복이라는 명분이 없진 않았지만, 깃발과는 달리 북벌론의 속내에는 명 왕조의 멸망으로 진정한 중화문명이 조선으로 옮겨왔다는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자리했다.
중국을 다녀와 ‘북학의(北學議)’를 쓴 박제가는 중국어 공용화를 주창하기까지 했다. 하기야 18세기 한 유럽인이 중국인으로 태어나지 못함을 탄식할 정도였으니 박제가의 ‘중국 쇼크’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학’과 ‘동학’의 다툼에 자취를 감췄던 ‘북벌’과 ‘북학’은 20세기 중반 부활한다. 공산주의 신중국 등장과 6·25를 거치면서 냉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반공’은 17세기 북벌론과 오십보백보였다. 하지만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우리의 대중국 인식은 돌변했다. 18세기 북학파의 ‘중국 배우기’보다 한 술 더 뜬 ‘신북학론’이라 할 만하다. 미국에서 받은 수모를 중국이 보상이라도 해줄 것 같은 ‘착시’까지 포함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정부가 고구려사 역사왜곡 시정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한·중 관계가 험악해지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는 발끈하면서도 한국사를 왜곡하는 ‘공룡 이웃’의 이중적 억지가 한국인의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이러다간 미국밖에 없다며 ‘신북벌론’이 머리를 내밀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역사는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분을 삭이고 들여다보면 억지 ‘동북공정’은 우리 사회에 거들먹거리는 친미적 신북벌론이나 친중적 신북학론에 대한 ‘입에 쓴 해독제’가 될 수도 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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