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져가는 뇌
2006년에 공개된 영화 <이디오크러시>는 인간의 지능이 극단적으로 퇴화하는 미래를 풍자했다. ‘바보’(idiot)에다 ‘민주주의’(democracy)를 합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보들이 통치하는 세상을 그린다. 지적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거짓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사회적 책임과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 조 바우어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동료에게 당부한다. “사람들에게 꼭 말해줘. 학교에 다니라고! 책을 읽으라고! 제발 머리를 쓰라고!”
영화의 설정이 황당무계한 공상만은 아니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골랐다. 질 낮은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한 결과,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올해 초 미국의 한 행동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업체가 뇌 썩음의 예시로 든 것도 부정적 콘텐츠를 찾아 끝없이 스크롤하는 행위인 ‘둠 스크롤링’과 소셜미디어 중독이다. 해외에선 이미 뇌 썩음 방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월 만 17세 미만 미성년자가 사용하는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에 주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 등이 담긴 ‘아동 온라인 안전법’을 만들었다. 호주는 아예 만 16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빠져 산다.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중독은 언어 능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뇌가 일찌감치 ‘쇼트폼’ 등에 노출되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활동에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이유로 신입생 중 희망자에 한해 실시했던 글쓰기 시험을 내년부턴 전원이 응시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에 ‘인물이 멘붕했다’ 따위의 표현이 나오거나 맞춤법이 틀리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 썩음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오죽하면 옥스퍼드대가 올해 단어로 등재시켜 섬뜩한 미래를 경고했을까. 스마트폰은 인간이 생각할 시간을 강제로 줄이고 있다. 이를 막을 손쉬운 방법은 독서다. 어른들부터 스마트폰을 놓고 활자를 읽고 또 읽어야겠다. 문해력 저하가 아이들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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