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국회의원
세상엔 이름 때문에 생기는 오해가 적지 않다. 그중의 하나가 대통령제다.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에 서는 제도가 대통령제이긴 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관계에서 입법부가 논리적으로 우위에 서는 게 대통령제다. 미국의 대통령이 의회를 압도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여소야대가 아니더라도 의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국회의원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법안제출권이 의원에게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입법부가 제안한 법안에 대해 거부와 수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의제 설정자(agenda setter)가 입법부란 얘기다.
대통령제에서 입법부가 우위에 선다는 사실은 일반적 통념과 배치된다. “미국 정치체제는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수정을 가할 수 없고 거부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국 대통령은 법안에 대한 부분 거부권도 행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 주지사보다 약한 권한을 지닌 셈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조지 체벨리스 교수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대통령이 법안제출권도 가지고, 여당을 통해 입법부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으니 사정이 많이 다르다. 미국에 비해 대통령이 의회를 압도하는 현실을 감안해도 우리에게 ‘좋은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인물 하나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왜 없을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것이나 핵심적인 이유는 대통령은 강하고 의회는 약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입법부를 압도하고 정당이 입법부를 옥죄니 의회가 의제 설정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준석 파동에서 보듯 국회의원들은 ‘꼬붕’이나 졸개 역할에 만족한다. 그 결과 괜찮은 국회의원이라면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을 꿈꾸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현실에서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이 아니라 좋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면 지질한 것일까?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모두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1명이고,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좋은 대통령보다 좋은 국회의원이 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인 목표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되는 길과 좋은 국회의원이 되는 길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둘 다 대표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처음부터 대통령 후보인 사람은 없거나 허상이다. 대통령직을 열망할수록 좋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루스벨트가 뉴딜개혁을 추진하다 반대파의 저항에 막혀 옴짝달싹도 못할 때 그에게 출구를 열어준 것은 국회의원 로버트 와그너였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와그너가 제안한 노동법(이른바 ‘와그너법’)에 의해 뉴딜개혁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국회의원은 빛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제도, 정당, 그리고 사람이다.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좋은 국회의원이 많아져야 정치가 좋아진다. 좋은 국회의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대통령 혼자서, 의회 다수의석을 가진 정당이라고 해서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다. 국회의원들이 의제 설정자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할 때 정치도 나아지고, 사회도 좋아진다.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 중에서 어떤 것을 정책화·입법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아젠다 세팅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좋은 의제 설정자가 된다는 건 곧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막힘없이 골고루 대표된다는 의미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한 사회의 ‘부분’을 대표한다. 좋은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그 부분을 잘 대표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그들의 이해와 선호를 정책·법안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또 서로 다른 부분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간에 경쟁이 불가피하므로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건방 떨지도 주눅 들지도 말고 실력과 용기로 행정부를 견제하고, 공정과 청렴으로 시장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약자에게 따뜻하고, 강자에게 엄해야 한다. 이처럼 좋은 국회의원이 많아지면 보통사람의 삶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나 아쉽게도 좋은 국회의원이 잘 띄지 않는다. 과연 있기는 하려나. 국회의원직은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스펙이 아니다. 권력과 이권을 누리고자 무리 지어 부역하는 자리도 아니다. 대저 국민 삶의 파수꾼이다. 좋은 국회의원을 물으면 누군가의 이름이 금세 떠오르는 그런날이오기를바래본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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