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책의 피, 정신의 유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1-12 09:35

청암 배성근




허균은 『한정록』의 범례에서 이렇게 적었다. “갑인(1614)·을묘(1615) 양년에 일이 있어 두 차례 북경에 갔다.그때 집에 있는 돈으로 약 4,000권의 책을 구입했다.” 짧은 문장 속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열정과 그 시대의 숨결을 느낀다.

그에게 책은 정신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혈맥이었다.


세종 때 한글이 만들어졌으나,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이는 극소수였다.책은 귀했고, 지식은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해도 그 활자가 누구의 손에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책은 곧 권력이었고, 지식은 신분이었다.


그런 시대에 허균은 두 해에 걸쳐 북경에서 4,000권의 책을 들여왔다. 그것은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지식의 국경을 넘는 도전이었다. 책을 통해 그는 세상을 넓히고, 사유의 지평을 확장했다.

허균이 정치적 모함으로 죽은 뒤에도,

그가 모은 책은 사위 이사성과 그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그의 정신은 책 속에서 살아남아 시간을 건너 후대의 마음을 두드린다.


조선의 학자들에게 책은 생명이자 수행이었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세상의 도리를 배우고, 한 줄의 문장에서 인간의 근본을 성찰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닦는 일이었다. 책은 단지 종이가 아니라,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며 인간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었다.


오늘 우리는 손안의 화면으로 수많은 정보를 흘려보내며 산다.그러나 허균이 북경의 서점에서 책을 모으던 그 절실함,

한 장 한 장 넘기며 쌓아 올린 정신의 무게는 잊혀져간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사유는 얕아졌다. 책이 인간의 품격을 세우는 시대가 멀어진 듯하다.


책은 여전히 인간의 피를 잇는 유산이다.

한 권의 책 속에 깃든 한 사람의 삶,

그 삶이 또 다른 존재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책은 죽지 않는다. 읽는 이의 손끝에서, 인간의 정신은 다시 태어난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인간의 품격이다."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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