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여덟째 날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1-24 14:08

사막 속의 사막 떼네레

지옥의 랠리 여덟째 날 새벽 3시



별이 반짝이는 소리. 

천지는 태고적 나를 보고 있다. 



가스버너에 커피 물을 올려놓은 채 그 자리에서 우린 기절한 듯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3시간이 지나 있다. 개운한 몸은 놀란 토끼 모양새다. 560.30km 400m 앞까지 비추는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하이빔 불빛 앞에 241번 주자의 차가 비참한 형태로 전복되어 있다. 단단한 모래 구덩이를 튀어 오르다 지표 안착에 실패, 그곳으로부터 150m 남짓 전후좌우 수십 바퀴 굵은 자국과 함께 차 모양은 형체조차 없다. 부디 경주자들이 살았길 바란다.


하늘에선 새벽별이 눈물방울처럼 초롱거린다. 

아프리카의 하느님..! 


605.62km. 

사막 중간중간 가시나무가 한 그루씩 

어둠을 휘감고 망연히 서 있다. 

물도 없는 곳에 신기할 뿐이다. 

우리 꼴은 어둠 속 도둑고양이 같다. 

어둠과 바람은 그 도둑고양이를 피해 

지평선 쪽으로 맹렬히 도망가고 있다.


680km. 

방향135°. 무한시계. 

태양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 차는 눈부신 광채의 사막위로  

패잔병처럼 피곤하게 굴러가고 있다. 

멀리 도착 지점을 알리는 

검은 타이어 표적물이 쌍안경에 들어왔다. 

앗싸, 정확하다. 

멋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우리는 차안에 둘러쳐진 구명 파이프를 두들기며 

아이처럼 환호했다.


나침반 방향을 잘 잡고 있는 줄 알면서도 2시간 이상 지형지물이 없는 사막을 달리다 보면 마음은 불안해진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는 기분 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햇살 맑은 사하라의 아침 


하늘 아침 속

벌을 닮은 햇빛이 쏟아진다.

어디에서 조각난 모임

생명 빛을 다한사막에서

이슬의 영감은

바람이 

뚫어간금빛. 

이처럼 아름다운 것을

생성한 날을 사랑하여 

내 무게가 별것 아니어 

소리쳐 이뿐인 기쁨이여.



8시 14분, 알리트 도착. 급유와 레이션만 받고 바로 다음 구간으로 출발. 오늘 구간은 알리트Arlit-알브르 티에리 사빈Albert Tierret Sabin, 692km. 스페셜. 차 일반 점검을 못 해서 염려가 된다.

53.85km. 2개의 돌산 사이에 나 있는 지그재그 코스가 만만찮은 지세다. 우리는 얼른 차에서 내려 밑으로 기어들어가 충격 제동 피스톤(업 소버) 4개를 급히 같아 끼웠다. 도회지에선 몇 년을 타도 고장 나지 않는 완충 장치 피스톤을 .거의 매일 갈아 끼워야 했다. 차가 얼마나 튀고 날고 충격을 받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이 피스톤이 말을 든지 않으면 차 하부 전체가 충격으로 내려앉을 수 있는 위험도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미끄러져 커브 돌기'에서 정확한 감이 오지 않는다. 갈아 끼우는시간 41분 소요.

107.50km. 조그만 마을 앞을 지났다. 마을 어귀에는 새까만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다. 반은 입고 반은 다 내놓은 몸으로 모두가 맨발이다. 종일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갈 우리, 그대들이여 정말 미안합니다.


271.80km. 굴곡 심한 모래 표면을 만나 차는 기절할 듯이 소리치며 힘들어한다.

293km. 모래에 빠짐.

324km. 모래에 또 빠짐.

372km. 모래에서는 완전 정지를 하면 안 된다. 정지한 차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80~90%는 빠지게 된다. 일단 빠지면, 두어 번 빠져나오려 하다가 안 되면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삽으로 모래를 퍼내고 깔개를 깔아야 한다. 또 깊은 모랫길 공격 시 일단 차가 조금이라도 전진하고 있으면 절대 기어 변속이나 액셀러레이터의 눌림 강도를 줄이면 안 된다. 엔진이 깨지는 소리에 기죽지 말고 미미한 전진이 계속되는 한 끈기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후우, 미치겠다. 목에서 단내가 난다.


483.20km.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서 일본 경주 차 미쓰비시가 모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태극기 달린 내 차가 도착하니, 부근에 있던 TV 카메라 기자들이 집중적으로 내게 몰려왔다. 차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있는 내 등 뒤에까지 와서 촬영을 해 댄다 

"엇! 에잇, 뭘 찍어!" 

나는 화가 치밀어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몽고족 오줌 누는 것 처음 봤소?" 

"하하. 그래, 처음 봤소."

기자 놈 대답 한번 고약하다.

"사실은 그걸 찍은 게 아니고 당신 등에 쓰인 코리아란 글씨를 클로즈업 했소."

나는 이미 많은 나라 기자들과 비박 장소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 유럽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상외의 한국 팀 참가에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다. 돈 많은 부자 나라들만 할 수 있는 경주라서 그럴 것이다.

한 기자가 묻는다.

"한국 차를 두고 왜 일본 차를 가지고 나왔소?"

할 말이 없다... 내 조국의 어느 자동차 회사가 나를 위해 차를 만들어 주랴.

하지만 나는 이 세계 최장거리 대회에 한국인이 참가한다 함이 자랑스럽고, 각국의 매스컴이 나와 태극기를 찍어가는 게 기분 나쁘지 않으니 본래 촌스러운 나이건만 제법 근사한 포즈라도 취해줘야지 싶다.


사막 빛을 닮은 양 떼들이 그림같이 자리한 사바나의 초원


607.50km. 전진 방향 185°. 평균 시속 160~180km. 하늘에는 흰 구름이 세시(여인들의 얼굴 가리개)처럼 걸려 휙휙 지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동남부 사하라의 마지막 종단 코스를 죽을힘으로 달리고 있다. 내일 부터는 사하라 횡단 8,000km가 시작된다. 오전 6시 43분 도착 어제저녁 마지막 확인 장소인 비박 장소에 도착하지 못해 13시간 37분 페닐티를 받았다. 어제 1위로 도착한 차와의 시간 차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걸 합산해 1위 주자보다 72시간 이상 차이가 나면 강제 퇴장이다. 우리차는 벌써 그차이를 20시간을 넘겼다. 염병할...


수천km 멀리에서 기름을 싣고 온 니제르 장사꾼들이 모래밭에 드럼 통을 눕혀놓고 있다. 기름 200L에 4,600프랑. 엄청난 값이다. 그나마 선물을 주고 값을 깎은 게 그렇다. 여기는 주위 오아시스로부터 수백km 떨어진사막 한가운데이다.

지난해 대회 때 대회장 티에르 사빈 씨가 대회를 관장하던 중 헬리콥터 사고로 이곳에서 죽었다. 이 외딴 사막에 한 그루의 신기한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티에리 사빈 씨 나무로 명명하고, 그의 뼈를 이곳에 뿌렸다. 하여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을 8번째 코스 귀착점으로 했다. 나는 불이 올라오는 목구멍에 아카텔사(社) 비행기 냉장고에서 꺼내온 얼음 같은 찬 맥주를 단숨에 반병이나 삼켰다. 살 것 같다.


두고온 봄


강물 옆으로 난길 에는 

지금쯤, 

하얀 꽃향기로 그윽할 거요.


무겁게 틀리어 오르는 검은땅 밑 

속절없이 받은 아픈 감명


연둣빛 숙명들은 

아름다운 말하리라. 

그리워서 말이오.


온갖 무리들과 

창과 고함으로 

궂은 표창을 받으러 나온 

싸움터 

바람부는 먼지 속 

눈을들어 태양을 올리면 

내속의 눈부신 헤매임 하루 하루


대기가 축축해지는 날

조금 내려진 마음은 

진작 슬퍼져 있던 것이었소. 


몰리는 안개와 비 사이 

남은 허공으로 

비집어 열어 가는 잿빛 맑은 노스텔지아 


내 마음 지금, 

하얀꽃 피고 있는 

그곳 

강물 옆으로 지나고 있소.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다음주에 계속...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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