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없이 만난 비

살다 보면 누구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길을 잃었을 때, 전기세나 가스요금을 어디로 내야 할지 모를 때, 집 계약 시 누군가 함께 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종량제 봉투를 파는 곳을 모를 때, 외롭고 힘들어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등.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걱정이나 불편일 수 있는 이런 순간들을 오롯이 홀로 대처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호대상아동에서 자립해야 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그들이다. 자립준비청년은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에 나선 청년으로 매년 2500여 명이 사회로 나오고 있다. 일반 아동의 경우 성인이 되어도 보호자로부터 꾸준한 정서적 지지를 받으며 독립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자립준비청년은 기존 보호되던 곳으로부터의 보호와 지원이 중단되면서 혼자 '자립'해야만 한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아동이 원하면 만 24세까지 보호기간 연장, 자립수당 지원기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 지원 강화 등 경제적·제도적 지원을 확대해 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수많은 자립준비청년과 만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지원과 함께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돕는 소프트한 지지 체계 지원도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멘토링은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 형성을 돕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립준비청년의 사회적 지지 체계를 만드는 데 효율적이다. 실제로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보호 종료 이후 멘토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동은 삶의 만족도가 6점(10점 만점)으로, 없는 아동(5.3점)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비정부기구(NGO)에서도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작년 10월 한 양육시설에서 함께 자란 청년들이 사회적기업 형태의 카페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은 본인들의 치열한 노력은 물론, 이 과정에서 만난 삼촌 같은 '카페사업가 멘토' 덕분에 더 안정적인 창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레시피부터 기자재 구입, 매출 관리 등 검색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경험에서 나오는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든든한 정서적 지지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카페를 후배 자립준비청년들과의 교류 공간으로 선언하고, 그들 스스로 멘토가 돼 먼저 경험한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또 다른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벽에 부딪히거나 실패를 겪을 수 있지만, 사회적 지지 체계가 부족한 자립준비청년들은 이 경우 더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때 위축되지 않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또래나 선배들이 이들 곁에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우산 없이 만난 비처럼, 오롯이 혼자서만 막막함을 겪지 않도록 멘토의 자질을 가진 많은 사람이 이들의 어려움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한 해를 보내며 건강하고 행복한 자립을 이룬 청년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고 있는 저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가 봐야겠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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