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창녕 부곡면 노리마을의 개비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06 10:00



경남 창녕군 부곡면 노리 마을 앞 도로가에는 조금은 낯선 풍경이 있다. 사람의 무덤이 아닌, 개무덤과 그 앞에 세워진 비석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변이지만, 그 앞에 서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진다. 이곳은 단순한 전설의 현장이 아니라, 한 지역이 기억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비석은 이른바 ‘개비(犬碑)’로 불린다. 임해진과 노리 마을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서로 다른 마을에서 기르던 두 마리의 개가 험한 산길을 매일같이 오가며 왕래했고, 그 반복된 발자국이 결국 사람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덕분에 고된 우회를 피할 수 있었고, 개들의 공덕을 기려 비석을 세웠다.


주목할 점은, 이 비석이 개무덤 앞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기념 표식이 아니다. 전통 사회에서 무덤 앞의 비석은 기억의 대상이 분명한 존재에게만 허락되는 자리다. 노리 마을 앞 개비는 개를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 실제로 기여한 존재로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이 공간은 낙동강 비리길의 성격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노리 마을 일대는 낙동강과 가까운 생활권으로, 강과 산, 마을을 잇는 수많은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다. 비리길은 누군가 계획해서 만든 길이 아니라, 강을 건너고 이웃을 찾고 생업을 이어가던 생활의 반복 속에서 생겨났다. 개비 설화가 말하는 ‘길의 탄생’ 역시 같은 원리를 따른다.


개무덤과 비석이 도로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삶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은 자리, 사람들이 여전히 오가는 길목에 기억을 남기려 했다는 뜻이다. 이는 죽은 존재를 산속 깊이 숨기지 않고, 살아 있는 삶의 동선 위에 두는 기억 방식이다.


비석의 글자는 세월에 닳아 또렷이 읽히지 않는다. 탁본을 떠도 문장을 온전히 복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비석이 서 있는 위치, 개무덤과의 관계, 그리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지명과 설화는 이미 충분한 증언이 된다. 글자는 사라졌어도, 장소는 기억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 이곳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 도로변의 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노리 마을 앞 개비와 개무덤은 조용히 말을 건다. 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으로 남기는가.



창녕 부곡면 노리 마을의 개비는 거창한 인물이 아닌, 이름 없는 존재의 반복된 마음이 공동체의 길이 되었음을 전한다. 낙동강 비리길이 그러하듯, 이곳의 길 역시 삶이 먼저 쓰고, 기억이 뒤따라 새긴 역사다.


시와늪 문인협회 회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사무실031-781-9811
사업자 번호583-06-03523
주소 인천 서구 원당대로 628 714호 보미 골드 리즌빌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