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삶을 끌던 힘에서 역사를 버틴 힘으로 — 영산 3·1절 행사 속 쇠머리 대기의 의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3-02 08:58

청암 배성근 시와늪문인협회 회장

쇠머리 대기 모습  @사진 제공 배성근 


2026년 3월 1일, 제65회 3·1 민속문화제 이틀째. 국가무형유산 영산쇠머리대기 공개행사를 관람하며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기념일은 기억을 환기하지만, 공동체는 기억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억이 몸짓이 되고 상징이 될때에 만 현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영산의 쇠머리 대기는 바로 그러한 ‘살아 있는 기억’이다. 쇠머리는 농경사회에서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소는 땅을 갈고 계절을 견디게 하는 존재였으며, 공동체 생존을 떠받친 힘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의 머리를 형상화해 앞세우는 행렬은 놀이가 아니라, 생존 기반을 공동체적으로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이 의식의 본질은 풍요의 기원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에 있었다. 여기서 하나의 인문학적 질문이 떠오른다. 공동체를 유지 시키는 힘은 무엇인가. 농경사회에서 그 답은 명확했다. 노동, 협력, 그리고 생존을 향한 집단적 의지였다.


그러나 3·1절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쇠머리 대기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농경의 상징이었던 쇠머리는 이제 역사의 지속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일제강점기는 정치적 주권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 자체를 위협했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밭은 갈렸고, 시장은 열렸으며, 공동체의 관계망은 유지되었다.


삶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이 일상의 지속이 가장 근원적인 저항이었다. 독립은 선언 이전에,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공동체적 선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쇠머리 대기는 단순한 전통 재현을 넘어선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인문적 메시지를 품는다.


생존의 지속은 저항이 되며 연대는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일상의 노동이 시대를 버틴다. 쇠머리가 앞장서는 행렬은 농경의례와 역사적 기억을 연결하며, 삶의 힘이 어떻게 역사적 실천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독립을 영웅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영산의 쇠머리 대기는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독립은 거대한 외침 이전에 삶을 지키려는 공동체의 선택이었다. 이 상징은 현대 사회에도 깊은 통찰을 던진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화가 심화되는 시대에, 역사를 유지하는 힘은 이념이 아니라 일상의 협력과 연대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결국 영산의 쇠머리 대기는 민속의 잔존물이 아니라 삶과 기억 그리고 역사를 연결하는 인문적 상징이다. 


그 행렬은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 오늘을 버티고 무엇으로 미래를 이어갈 것인가. 과거에 소가 삶을 끌었다면, 오늘의 쇠머리는 역사를 끌고 간다.


청암 배성근 시와늪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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