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어머니는 폭력과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존재
영화《아이엠마더》국내 개봉 포스터또 비가 오면
이성복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영화《아이엠마더》의 한 장면
이 시에서 비에 젖고 물에 잠기는 어머니의 모습은 단순한 자연 이미지가 아니라 세계의 폭력과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존재를 상징한다. 물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현실의 고통이며, 몸이 불어날 때까지 잠겨 있으면서도 미동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준다.
“몸이 불어나도 미동도 않는” 어머니의 모습은 세상의 고통을 대신 감당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점점 축적되는 물의 이미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의 양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는 가족을 잃은 한 여성이 스스로 정의의 집행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액션 스릴러 《아이엠마더》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원제가 《페퍼민트PEPPERMINT》인 이 영화는 라일리 노스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가 가족을 잃은 뒤 복수를 실행하는 인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라일리 노스는 세상의 폭력 속에서 몸으로 대응하는 어머니다. 이 역할은 배우 제니퍼 가너가 연기했다.
영화《아이엠마더》의 원제《PEPPERMINT》포스터
로스앤젤레스의 평범한 가정주부 라일리 노스는 남편과 어린 딸을 갱단의 총격으로 잃는다. 하지만 부패한 사법 시스템 때문에 범인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 사라진 라일리는 5년 동안 스스로를 단련하고 완전히 다른 존재로 돌아온다. 이후 그녀는 범죄 조직을 하나씩 제거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행한다. 경찰 역시 그녀를 추적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과연 범죄인지 정의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제기된다.
영화는 상실이 어떻게 한 인간을 변화시키는지를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만 보면 달콤한 향이 떠오르지만, 영화가 품고 있는 정서는 차갑고 매섭다. 향기는 남지만 온기는 남지 않는다.
영화는 정의와 복수의 경계를 묻는다. 법이 실패했을 때 개인의 분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복수는 정의가 될 수 있는가. 혹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인가.
영화《아이엠마더》의 한 장면
라일리는 영웅으로 불리지 않는다. 경찰은 그녀를 범죄자로 기록하고, 시민들은 유령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녀가 제거한 대상들은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화려한 액션보다 감정의 밀도가 있다. 총격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아무도 없는 식탁의 이미지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은 꺼지고, 축하 노래 대신 침묵이 흐른다.
엄마라는 이름은 보호의 상징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 이름은 무기가 된다. 사랑이 가장 깊은 곳에 닿았을 때, 그 사랑은 때때로 파괴의 힘으로 변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라일리는 사라진다. 복수는 완성되었지만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의가 실현되었는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전과 다른 공기가 남는다.
이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낸다.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 복수는 끝났지만 상실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오래 붙잡아 둔다.
영화《아이엠마더》의 한 장면
이 영화의 핵심은 화려한 액션보다 분노의 감정선이다. 라일리는 초인적인 영웅이라기보다 상실을 견디지 못한 인간에 가깝다. 그래서 총격 장면보다 침묵하는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전개는 전형적인 복수극 구조를 따르지만, ‘엄마’라는 설정이 주는 감정의 밀도가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제니퍼 가너는 연약함과 냉혹함 사이를 오가며 복수의 설득력을 만든다. 영화는 결국 질문을 남긴다. 법이 작동하지 않을 때 개인의 복수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복수를 완성했지만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액션 영화이면서 동시에 상실의 이야기다.
앞서 인용한 이성복 시인의 시 「또 비가 오면」에서 반복되는 물의 이미지는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여기서 어머니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이 통과하는 장소가 된다.
영화 《아이엠마더》에서 라일리는 개인을 넘어 사회가 처리하지 못한 폭력을 대신 처리하는 존재가 된다. 폭력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보호하려는 힘이다. 엄마 라일리의 용기 넘치는 행동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아이엠마더》의 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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