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차가운 이성이 만든 나라 - 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4-30 07:24

— 스위스를 부러워하는 이유


유럽의 한복판에 자리한 스위스는 지도 위에서는 작다. 산악으로 둘러싸인 내륙 국가, 인구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나라는 숫자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소득, 낮은 실업률, 그리고 오랜 기간 유지해 온 혁신 역량까지. 작은 국토 안에 응축된 이 성취는 단순한 경제 성과를 넘어 하나의 문명적 태도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글로벌 기업에서 찾는다. 노바티스, 로슈, 네슬레와 같은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일 뿐, 원인은 아니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진짜 기반은 보이지 않는 곳, 곧 시민들의 사고방식에 있다.


스위스의 중립은 흔히 평화를 사랑하는 태도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현실 인식 위에 세워진 선택이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겠다는 결의, 전 국민이 안보의 주체가 된다는 의식은 ‘공짜 안보는 없다’라는 냉정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평화조차도 비용과 책임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경제 영역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스위스 시민들은 복지와 권리를 논할 때조차 감정이 아닌 계산으로 접근한다. 휴가를 늘리는 문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문제, 부유층 과세를 강화하는 문제까지—그들은 ‘좋은 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보수성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고려하는 일종의 집단적 이성이다. 당장 이익보다 장기적 안정, 감정적 정의보다 구조적 균형을 선택하는 태도.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하는 판단이다.


이러한 선택들이 반복되면서 한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축적된다. 그것이 바로 ‘신뢰’다. 국가는 국민을 신뢰하고, 국민은 기업을 신뢰하며, 기업은 다시 사회에 책임으로 응답한다. 이 순환 구조가 단단해질수록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구성이 만들어진다.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는 많은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 일자리의 구조가 흔들리고, 생산의 방식이 재편되며, 사회적 갈등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때 진정한 안전망은 제도만이 아니라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사회적 신뢰’일 것이다.



그 점에서 스위스가 보여주는 모델은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풍요는 자연경관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이며, 반복된 판단의 축적이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요구가 아니라 책임으로 쌓아 올린 질서의 산물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부러워해야 할 이유는 알프스의 설경이 아니다. 그보다 더 높고 단단한 것

바로 현실을 직시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이성’이다.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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