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칼럼] 돌로 쌓은 시간, 마을로 이어진 역사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5-03 16:14

창원 진동리 청동기 시대 장례문화를 보다 -청암 배성근-

고인돌 A군


진동의 들판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이 켜켜이 내려앉은 깊은 숨결이다. 발밑의 흙을 조금만 들추어 보면, 그 아래에는 이미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 단단한 돌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진동리 유적은 단순한 고고학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을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기록이다.


이 유적은 토지 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세상에 모습이 드러났다. 우연히 드러났지만, 그 내용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국도 14호선 인근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경작하던 밭이 확인되었고, 태봉 천 주변에는 45기의 석관묘와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었다. 이는 이곳이 단순한 장례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던 마을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권 전체였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진동초등학교 인근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은, 곧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았던 당시의 세계관을 상징한다.


고인돌 B군

고인돌 B군 안내표지


진동리 고인돌군은 총 11개의 군집으로 나뉘어 조사되었다. 그 구조는 매우 특징적이다. 매장 주체 부를 중심으로 원형 또는 사각형의 경계석을 둘러 하나의 ‘구획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시신을 묻는 행위를 넘어, 죽은 자를 위한 별도의 영역을 설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묘역 식, 구획 식, 혹은 기단식 무덤이라 부른다. 이러한 형식은 주로 한반도 남부 해안 지역에서 확인되며, 지역적 문화와 공동체 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이해된다.


이 경계는 단순한 돌의 배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질서가 죽음 이후에도 유지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의지이며, 공동체 내부의 위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큰 묘역과 작은 석관묘 사이의 차이는 곧 생전의 지위와 역할을 반영한다. 돌은 침묵하지만, 그 배치는 명확한 언어를 가진다.


남방식 고인돌, 즉 기반 식 지석묘는 이러한 특징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이 ‘팔암’이라 부르던 이 고인돌은 지표면 위로 드러난 형태로, 매장공간 위에 굄돌을 놓고 그 위에 거대한 상석을 얹는 구조다. 특히 이 상석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이는 인근 지역에서 돌을 채취해 옮겨왔음을 의미하며, 단순한 장례를 넘어선 집단적 노동과 조직력이 동원되었음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죽음을 위해 공동체가 움직였다는 사실은, 그 인물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고인돌 B군에서는 사각형 묘역 두 기가 서로 연결된 구조가 확인된다. 자갈층을 평탄하게 다진 뒤, 네모난 경계를 만들고 그 내부에 매장공간을 조성하였다. 이후 뚜껑 돌을 덮고 잔돌을 다시 쌓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서 방향으로 연결된 이 구조는 단순한 물리적 연결을 넘어, 혈연 혹은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도 함께 존재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가 돌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고인돌 H군


석관묘는 보다 구체적인 생활과 의례를 보여준다. 15호 석관묘에서는 인골과 함께 석촉이 출토되었고, 시신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무릎을 굽힌 상태로 매장되었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일정한 의례와 믿음에 기반한 행위로 보인다. 죽은 자가 특정 방향을 향하도록 배치한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1호 석관묘에서는 적색마연호와 석검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는 죽은 자가 저승에서도 삶을 이어간다고 믿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단순히 묻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내는’ 문화가 존재 했던 것이다. 또한 석관의 크기와 구조, 그리고 두 겹으로 덮인 뚜껑 돌은 매장의 정교함과 함께 기술적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29호 석관묘에서는 관옥과 곡옥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장신구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요소로 해석된다. 특히 별도의 부장 공간을 마련한 점은, 물건을 단순히 함께 묻는 것을 넘어 의례적 의미를 부여했음을 보여준다.


고인돌 K군 


8호, 12호, 38호 석관묘에서는 다양한 축조 방식이 확인된다. 판석을 세워 벽을 만드는 방식, 강돌을 쌓아 구조를 형성하는 방식, 그리고 뚜껑 돌을 여러 겹으로 덮는 방식 등은 당시 기술의 다양성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전통과 환경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고인돌군 전체를 살펴보면, 원형 묘역과 사각형 묘역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원형 묘역이 사각형보다 앞선 형태로 추정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장례 문화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또한 남쪽은 낮고 북쪽은 높은 지형을 고려해 경계석을 층층이 쌓아 높이를 맞춘 점은,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와 적응력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자연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다.


남방식 고인돌


이 유적의 의미는 청동기 시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근 망곡리와 신촌리에서는 같은 시대의 마을과 무덤이 확인되었고, 대평리에서는 삼국 시대 무덤이 발굴되었다. 또한 인근 마산 지역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으며, 유적 서쪽에는 조선시대 진해 현 관아와 성이 남아 있다. 이는 이 일대가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같은 땅을 선택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삶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진동리 유적은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왜 돌을 쌓는가. 그것은 죽음을 위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기억되기 위해, 잊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남기기 위해 사람들은 돌을 쌓았다.



석관묘


돌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공허하지 않다. 그 안에는 질서가 있고, 믿음이 있으며, 인간의 의지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진동의 들판 위에 서면,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시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시와늪 대표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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