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칼럼] 살아 탁주 한 잔이 더 좋아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05-13 06:44


■[효 칼럼] 살아 탁주 한 잔이 더 좋아 


“死後千秋萬歲之名

 不如生時濁酒一杯''

 (사후천추만세지명

 불여생시탁주일배)


 ㅡ이규보,고려 때 대문호


이규보의 한 구절은 짧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준다.


“사후의 이름보다 생전의 탁주 한 잔이 낫다”는 말은 결국, 존재의 가치가 기억이 아니라 관계 속에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한 잔의 온기, 이름보다 깊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남긴 이 말은 명예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이다. 


사람은 죽은 뒤 이름으로 남기보다, 살아 있을 때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온기 속에서 진짜 삶을 경험한다는 뜻이겠지요.


천추만세의 이름은 역사 속에 남을 수는 있어도,

부모의 식탁에 마주 앉아 따르는 막걸리 한 잔의 온기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변해가는 효(孝), 사라지는 ‘찾아뵘’


오늘날 효의 개념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경제적 지원, 간병, 제도적 복지—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자주 찾아뵙는 일”이다.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로 대신되는 안부 속에서 노인들은 종종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그 속내에는 사람의 체온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막걸리 한 잔의 철학


막걸리는 소박하다. 화려하지도, 값 비싸지도 않다.

그러나 그 한 잔에는 세 가지가 담겨 있다.


시간 ㅡ함께 앉아야 나눌 수 있는 것

눈빛ㅡ말보다 깊은 위로

존중ㅡ‘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표현


부모에게는 그 한 잔이 단순한 술이 아니라,

“나는 아직 당신 곁에 있습니다”라는 살아 있는 '효'이다.


 살아 있을 때, 이름이 아닌 사람으로

우리는 흔히 말한다.


“나중에 잘해드리면 되지.”


하지만 이규보의 말은 그 ‘나중’을 부정한다. 죽은 뒤의 이름은 아무리 길어도,

살아 있는 하루의 만남보다 길 수 없다.

효란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잠깐 들러 앉아 함께 웃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탁주 한 잔이 남기는 것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귀해진다.

부모에게, 어른에게 값비싼 선물 대신

오늘 한 번 찾아가 정다운 대화 막걸리 한 잔을 나누는 일.


그것이야말로

천추만세의 이름보다 오래 남는 사람의 기억일 것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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