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촉석루가 들려주는 시간의 깊이
촉석루
속도에 밀려 모든 것이 흘러가는 시대에도, 어떤 장소는 시간을 붙잡는다.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유산인 촉석루는 바로 그런 공간이다. 강가의 바위 위에 우뚝 선 이 누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와 인간의 감정이 겹겹이 쌓인 하나의 ‘기억의 지층’이다.
촉석루는 김지대가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한 이후 수차례의 소실과 중건을 반복해 왔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장수의 지휘소가 되었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선비들이 시를 짓고 풍류를 나누던 자리였다. 이처럼 하나의 공간이 전쟁과 예술, 긴장과 여유라는 상반된 얼굴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사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임진왜란과 6.25 전쟁을 거치며 촉석루가 불타 사라졌다는 사실은 문화유산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일깨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누각이 다시 세워졌다는 사실은 인간이 기억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행위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우리는 잊지 않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진주성 동문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촉석루는 1960년에 시민들의 힘과 공공의 지원으로 재건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구조를 지닌 이 누각은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정신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다. 건축은 사라져도 의미는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촉석루가 단순한 지역 명소를 넘어 ‘영남 제일의 명승’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북쪽의 부벽루와 나란히 언급될 만큼, 이곳의 풍광은 시대를 초월해 찬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에 올라 남강을 바라보며 남긴 시와 글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감성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촉석루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견디며,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들이 넘쳐나는 오늘날, 촉석루는 우리에게 묻는다.
촉석루 출입문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늦추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은 속도가 아니라, 이렇게 깊이 쌓인 시간의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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