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지양하다' 대신할 더 나은 말 없을까
① 오판을 지양해 주었으면 ② 돈 많이 드는 휴가를 지양하자 ③ 개별 귀가를 지양하고 다들 모여서 가라 ④ 신년 인사차 상급기관 방문 지양할 것 ⑤ 오물 버리는 일을 지양해 주십시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오늘의 골칫거리를 안긴 그 사람 맞다. '지양(止揚. 그칠 지 오를 양)하다'는 헤겔에게서 온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 뭔가를 그친다? 독일어 'aufheben(아우프헤벤)'이 일본을 거쳐 그렇게 수입됐다. 아우프는 '위(上)로' 느낌이고 헤벤은 들어 올리거나 없애는 것이니까 지양의 한자 선택에 흠은 없다. 정반합이다. 여기, 하나의 주장인 테제가 있다. 정(正)이다. 맞서는 주장 안티테제가 있다. 반(反)이다. 헤겔은 더 높은 진테제(합. 合)로 가는 길에서 낮은 단계(정과 반)의 긍정은 보존하고 부정은 폐기하는 것을 "지양한다"고 개념화했다. 지양을 양기(揚棄. - 버릴 기)라고도 하는 이유다.
'지양하다'에 대한 국립국어원 소식지 설명 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쉼표, 마침표 2023년 5월호 파일 캡처
사정이 이런데도 이 말을 단순한 폐기와 부정, 제거와 같은 뜻으로 남용한다. 들머리에 든 ①∼⑤가 보기다. ①은 "오판을 하지 않았으면" 하면 되지 않나. ②는 "돈 많이 드는 휴가를 피하자"가 낫다. ③도 "홀로 귀가하지 말고 다들 모여서 가라" 하는 게 잘 읽힌다. ④는 "신년 인사차 상급 기관 방문하지 말 것" 하는 게 더 잘 들린다. ⑤ 역시 "오물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하는 게 좋은 소통 태도 아닐까. 않다, 말다, 피하다 하면 되는 곳에 지양하다를 놓는 게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어떤 땐 '지향(志向)하다'의 반대말인 양 '지양하다'를 쓴다.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하다'라는 지향하다는 지양하다와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지양하다'는 언제 쓸까. 국립국어원이 과거에 내놓은 예문 둘을 보자. ⑥ "건전한 토론을 위해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해야 합니다."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면 건전한 토론이라는 더 높은 곳에 오르지 않겠나. ⑦ "환경을 위해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은 지양합시다." 더 높은 것인 좋은 환경에 이르기 위해 불가피하기에 일회용품을 사용은 하되(보존) 남용은 말자(폐기)는 뜻이지 않겠나. 말은 변한다. 뜻이 줄거나 늘고, 원래 뜻하고 관계없이 쓰이기까지 한다. '지양하다'도 이미 그런 것일까. 이렇게 뿌리가 뚜렷하고 뜻과 쓰임새가 환한데도?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지은이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옮긴이 박정훈, 『1828/29년 헤겔 미학강의』, 세창출판사, 2025
2. 박수밀, 『한자의 쓸모』, 여름의서재, 2024
3. 이수열,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 ㈜현암사, 2014 - 이 책에 나온 예문을 바꾸어 ①∼⑤로 활용
4. 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쉼표, 마침표 2023년 5월호 - https://www.korean.go.kr/nkview/news_pdf/2023_5(1).pdf
5. 표준국어대사전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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