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㉒] 내가 미조리에 가는 이유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6-08 06:08

남해의 미조항은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항구다

우리나라 남해안의 아름다움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곳

죽방렴으로 가두어 잡는 제맛나는 생선을 맛볼 수 있다

스페인 사진작가 후안 깨롤(Joan Carol) 작품 내가 미조리에 가는 이유


오인태


지금,

누군가

사람 때문에

절망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잊어버리는 일이

죽는 일보다 어려우시면

굳이 잊으려 말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일이

죽는 일보다 힘드시면

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꼭

남해 미조리에 한 번 가 보시라

거기 누구 한 사람

만나게 되면,

그리곤 죽든지, 말든지

나는 모를 일이다


디지털아티스트의 작품 사진

□ 미조리에서의 하룻밤 | 장옥관


칠월에는 남해에 치자꽃이 핀다. 쇳물처럼 고요한 바다를 배경으로 흰치자꽃잎이 떨어지면 그 진한 향기는 물결에 실려 끝없이 바닷가를 떠돈다. 


예부터 남해에는 자랑거리 3자가 있었으니 곧 치자와 유자와 비자. 곳곳에 비자림이 자생하고 집집마다 돌담 너머 유자나무가 짙푸름을 자랑 하는 곳.억겁의 시간동안 파도소리를 들어온 남국의 나무 들은 모두 귀가 바다 쪽으로 열려 있다.


남해를 얘기할 때 흔히 꼽는 것은 금산과 보리암, 상주리 해수욕장 등.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남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 섬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방법부터 달라야 한다. 남해대교로 들어가는 편한 방법을 버리고 삼천포에서 창선으로 도선 금남호를 타고 거꾸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한다.


창선으로 들어가 대벽리에 있는 왕후박나무를 보고 창선대교를 건넌다. 이곳은 죽방렴(대나무 그물)으로 유명한 곳. 우리나라에서 가장 제맛나는 생선을 맛볼 수 있다. 죽방렴이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원시적인 어로 방법. 물살 빠른 좁은 물목에 나무말뚝을 박아 늘어놓고 조류를 따라 들어오는 고기를 가두어 잡는다.


경상남도 남해군 지족해협에 설치된 죽방렴

물고기는 원래 신경이 예민해서 잡는 방법이나 수송, 보관법에 따라맛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낚시나 인공 그물 같은 공격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은 상처를 입어가며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잡히기 때문에 제 맛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


특히 멸치같이 성깔있는 고기는 잡히면서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맛이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죽방멸치는 보통 멸치보다 두배이상 값이 비싸다.


창선대교 아래 지족리는 시속12~15km의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이어서 천혜의 죽방렴 설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멸치 외에도 보리새우, 감성돔과 같은 고기도 잡히는데 배에서 외지손님에게 팔기도 한다.


삼동면으로 들어오면 물건방조어부림을 찾는다. 해일과 해풍의 피해를 막고 고기가 몰려 들도록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림을 한곳. 땡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등 상층목 2천그루와 보리수, 동백, 윤노리나무 등 하층목 8만그루의 고목이 해안을 따라 둘러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몽돌해변(은점마을)

그 아래 은점의 몽돌밭은 검은 빛 일색의 거제 몽돌밭과는 달리 다양한 색깔을 자랑한다. 이 동네 아이들은 팽이를 따로 깎지 않는다. 아무 돌이나 평평한 곳에 놓고 돌리면 팽이가 되는 까닭이다.


은점에서 미조까지의 해안도로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아름다움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곳. 동해안 강축도로 (강구~축산)가 엄정 단호하여 뒤끝이 깨끗한 소주 맛이라면 이 도로는 그윽하고 은근하여 길게 여운이 남는 브랜디 맛이다.


마안도, 콩섬, 폿(팥)섬, 범섬 등으로 이어지는 무인도를 눈 앞에 두고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달리면 달은 눈썹끝에 걸리고 감미로운 해풍은 종려나무 가로수를 흔들어 댄다.


항도마을은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온 김만철씨 일가가 살고 있는 곳. 그 다음 초전마을은 3번 국도가 끝나는 곳이다. 여기서 삼천포, 진주, 천안으로해서 그리운 금강산까지 이어진다. 삼천포를 가기 위해서는 뱃길을 이용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도 가운데 뱃길이 포함된 것은 이곳이 유일한게 아닌가 싶다.


남해의 어업 전진기지인 미조항은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항구. 상답 열마지기를 팔아 기생을 샀던 흥청거리는 노랫가락이 있고, 한 마디를 물으면 열마디로 대답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 고장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바다장어나 뽈락 구이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불꺼진 어판장 부근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여유와 낭만을 맘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치자꽃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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